노트2010. 3. 26. 00:46

 1. 우리는 저마다 타인에 대해 <인상>을 갖는다. 오랜만에 사전도 찾아본다. <동아 새국어사전>에서:
 인상(印像)  1)외래의 사물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감각 (image)
                 2)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 자취 (impression)
 구분 해야할 말은 人相: 사람의 생김새와 형세 (appearance, look))

외모, 행동, 말투, 함께 일어났을 때 일어난 사건 등 아주 수많은 요소에 의해 우리는 상대를 파악하고 저 마다의 기준으로 분류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걘 이런~아이지."
응용 예문을 말하자면, "걔가 원래 그렇지." "역시 이미지란 무서워" 등등등

2. 이미지를 형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한 번 만난 사람은 외모가 이미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지만, 만남이 반복 될 수록 행동이나 말투의 비중이 올라간다. 물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과 격언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모두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모두 산타 할아버지가 누군지 쯤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렇게 말한다
보이는게 전부지. 그럼 또 뭐가 있냐?

3. 한 번 상대가 형성한 <내 이미지>는 좀처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눈을 신경쓴다. (물론 내 이미지 따위 니가 갖는 거지 내가 갖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를 신경 안쓴다.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가장 쓸데 없는 책은 "착한 사람 컴플렉스 벗어나기" 같은 것이다.)
특히나 가장 꺼리는 것은 실패나 실수등 부정적인 면을 보이는 것. 누구나 타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아있고 싶기 때문에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한 사람일 수록 실패나 실수를 보이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되었든 현대의 "공부"라는 것은 빨리 패턴을 찾는 사람이 유리한거고, 실패나 실수가 자신이 형성하고 싶은  "좋은 사람" 이미지에 얼마나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는 지 잘 알고 있으니까.

4. 예를 들면, 자존심이 높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일 수록 자신의 실패를 타인이 목격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는 것은 아예 하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영어 시험에는 100점 맞으면서도 외국인이랑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한국 사람이 만들어 진다.

5. 빈도(頻度, frequency, 어떤 일이 되풀이 되어 일어 나는 정도)가 높다는 것은 그 만큼 신뢰성을 강화시킨다. 타인의 특정 행동에 대해 특정한 인상을 받았을 때,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가 똑같은 일을 다시 한 번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비슷한 류의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럼 그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영어를 못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안하고, 안한다고 생각할테니까(부끄러운가? 쯤의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패턴이 반복되면, 저 사람은 영어를 하지 않는/못하는 사람이 된다. (어차피 못하는 사람이든 안하는 사람이든 쓸모가 없다는 결론에서는 같다) 그러니 만약 타인에게 영어를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싶다면, 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6. 얼마전에 선생님인 K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아이들은 아주 활발해서 배운 것은 그 날 5번씩 써 먹으려고 하는 애들이 있고 어떤 아이들은 도대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도 모르게 조용히 있는 애들이 있다고. 그것은 그냥 기질의 차이지만, 실력이 같은 그 두 타입의 아이들이 있을 경우 주위의 사람들은 활발한 전자보다 조용한 후자의 타입을 더 실력 있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실패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덧, 말없는 남자를 멋있어 하는 여자들의 심리도 이런 것이다. 그녀는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는 타입일 수도 있다. 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다는 것은 이미 깨달았겠지만, 현실보다는 꿈에 있는게 더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그러니까 조용히라도 해줬음 좋겠어 라고 생각하거나.

7. 그러나 실패라는 것은 실행(practice)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 중에 하나다. 태어날 때 부터 할 줄 아는 건 숨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걷는 것도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운다  이 말인 즉슨 누구도 실패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8. 그러나 사람은 정말로 말초적이라서 본대로 믿고 자기가 생각한게 맞다고 확신하고 너보다 내가 너를 잘 알아 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며 살아가고, 그래서 또 대부분은 그 타인의 시선에 벌벌 떠면서 살아간다.

9. 하지만 존재를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가능성이다. 지금은 못 할지 몰라도 거듭 도전하고 셀 수 없이 실패하면서 변화 할 수 있다. (말했다 싶이 태양과 파도 그리고 시간이 모두를 도와 줄테닷) 여기에 관해 Ralph Waldo Emerson이 또 명언을 남겼다

"What lies behind us and what lies before us are tiny matters compared what lies within us."

정리하자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There are more than that meets the eye)

10.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질문이 들어 올 것 같아서 대답을 고민해 봤다. 
다음의 전제를 기억한다. 하나, 시끄러운 인간도 좀 참아줘 본다. 둘, 말없는 인간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을 익힌다.
다음의 프로세스를 따라 실행한다. 첫째. 그냥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 던 대로 산다. 둘째, 그러다 상대가 못 보았던 면모를 보이면 깜짝 놀란다. 셋째. 그리고 그 사건은 홀라당 까먹고 다시 세번째단계로 돌아가서 산다. (살던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하다, 어쨌든 나는 최상의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1. 그렇지만 오늘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오늘 그 아이는 종이와 펜 없이 단 두번 만에 내 전화번호를 외웠다.)

덧,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전의 실행의 실패요인을 분석하는 것을 영어로, postmortem이라고 한다. 원래 뜻은 시체해부(autopsy와 동의어). 실패한 사건은 이미 시체인 것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의 실패를 <상대에 대한 내 이미지>안에 담아 놓는 것은 결국 나혼자 시체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랑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덧붙임이 있다면, 어찌되었든 10번과 11번의 과정들은 <사귈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해야한다. 아, 사귈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정하냐고? 하하하. 그것이야 말로 삶의 아이러니랄까? ㅋㅋ )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Don't judge me.  (1) 2010.04.02
그의 이상형  (1) 2010.03.30
조각 케익 위의 딸기  (5) 2010.03.23
한국의 정치~2007년 제 17대 대선(이명박 정부의 등장)에 대한 정치학적 평가  (1) 2010.03.10
합리적 소비자  (1) 2010.03.06
Posted by aeons
노트2010. 3. 23. 21:57
Strawberry on the short cake.

1. 동명의 일본 드라마가 있다. 당신은 조각 케잌위의 딸기를 먼저 먹습니까 나중 까지 남겨뒀다가 마지막에 먹습니까?
많은 일본인들이 저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듣는지 아닌지는 나야 모르지만, 우리 나라에 그것도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대강 다 못알아듣더라. 그러니 제대로 의역하자면; 좋아하는 걸 먼저 먹는편? 아껴뒀다 나중에 먹는 편?

2. 경제학에서는 좋은 일에 뜸을 들이려는 경향을 완미효과(savoring effect)라고 한다. 남태평양의 섬에가서 한달 간 휴가를 즐기는데 내가 돈은 다 대줄께. 언제쯤 떠나고 싶니? 라고 물으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후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일은 당장 겪고 싶어 하는데 이를 공포효과 (dread effect)라고 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행동 특성을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건이 일어나기전까지의 인간의 기대감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좋은 일이 생기기전까지는 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를 상상하며 즐거워 할 수 있기 때문에 상상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쁜 일일 경우 그 일이 불러 일으키는 공포나 불안감을 없애고자 되도록 빨리 경험하려한다는 것이다. 

  <Good Things> ~기대/ 즐거움~
------@---------------------------!----->
        현재                                    사건
   <Bad Things>   ~불안/ 공포~
(과연?)

3. 역시나 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훌륭한 소비자가 아니라서, 좋아하는 걸 꼭 나중에 먹으려고 한다.
도서관에 있으면 가끔 입이 심심해서(그러나 도서관은 언제나 군것질하기 용이하지 않은데 위치하니까) 사탕을 사다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레몬맛인데, 항상 사탕을 꺼낼 때마다 "음 레몬맛은 아꼈다 나중에"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결국 어느날 문득 알아차리고 보니 사탕 상자에는 온통 레몬 맛만 남아있는 것이다.
내 사탕 상자를 목격한 Master Shin이 노란 사탕을 입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리라야,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넌 M이야."
Shin이 심리학이나 의학(그 중에서도 정신과)을 전공하지 않아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_-;;

덧, M 은 마조히스트의 M

4. Strawberry on the short cake의 문제에 대해 주절 주절 설명을 하자 Y가 넌 늘 별 쓸데 없는 걸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난, 딸기만 먹어

5. 이 문제가 얼마나 기대/공포의 문제로 치환 될수 있는지도 ,가학/피학의 문제로 설명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온통 노란색 사탕만 남은 상자안을 보니까 순식간에 사탕이 먹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많이 좋아해도 선택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레몬맛 사탕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레몬맛 사탕보다 다양성과 선택권이 주어지는 상황을 더 좋아한다는 것.

5. 아무튼 계속 구차하게 변명을 해 봤자 뭔가 내가 S나 Y에 비해 소인배임이 분명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별 상관없으면서도 묘하게 자꾸 이어서 생각이 나는 이야기를 해 보자. 이런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인내력이 성공에 아주 주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이런 실험을 했다. 실험자는 마시멜로우를 담은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방안에 혼자 있는 아이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먹지 않고 있으면 2배의 마시멜로우를 주겠다고 말하고 나간다.
90%가 넘는 아이들은 마시멜로우를 홀라당 먹어 버리지만 참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렇다
첫째 미래 가치를 고려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둘째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셋째 먹을 걸 두배나 줄 수 있는 사람 말을 잘 들어야 성공한다.

마쉬멜로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성공할 게 아니고? (적어도 메타볼릭 신드롬에 걸릴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건강도 성공의 중요한 요소다 알다시피)

이 이야기의 진정한 위너는 다음과 같은 아이들이다. 홀라당 먹어치우고는 실험자가 돌아오면 자기가 안 먹었다며 빨리 약속한대로 2배의 마쉬멜로우를 달라고 한다.
Posted by aeons
영화관2010. 3. 22. 22:34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감독 루이 시호요스 (2009 / 미국)
출연 리차드 오배리
상세보기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3.19)
www.takepart.com/thecove

1. 영화
2. 해양 자원의 문제
   ~생물 종의 보호와 획들에 관해서
3. 문화의 다양성과 지구 문제의 해결
4. 객관성과 지구 문제
5. 기타

1. 영화에 대해
   아카데미 상을 받으면서 일본을 들썩 하게 했던 영화. 엄청나게 잔인하기 때문에 사실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겠지만, 여느 보도 다큐가 그렇듯 생각해볼 문제는 잔뜩 남겨 놓는다. 영화는 일본 본토에 있는 어촌 마을 타이지에서 일어나는 연간 2만 3천마리의 돌고래 포획에 관한 내용.

 일단 영화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주제의 무거움을 잘 풀어냈는 점.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사이에 유쾌한 에피소드(돌고래 풍선. 구금 에피소드. 영화 소품)들을 집어넣음으로서 매끄럽게 스토리를 풀어갔고, 묘하게 잔인한 장면은 늘 일본인이 주인공이고 유쾌한 장면들은 미국애들이기 때문에 영화의 주제에 확실히 공감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한 듯 하다.(개인적으로 구금 이야기할때 빵터졌었음)
 그리고 아마도 돌고래를 살리려는 이 프로젝트의 주동자가 돌고래 조련사였던 릭이어서 인 듯하지만, 돌고래의 특징인 호기심이 많고 지능이 높으며 인간에게 호의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잘 부각 시켰다. 서퍼와 다이버들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라던지-무엇보다 다이버가 돌고래와 같이 헤엄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고 황홀하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저런 돌고래를! 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듯하다-릭이 이 일에 뛰어들게된 계기 등 철저하게 미시적으로 개인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돌고래 사냥을 그만하게 도와주세요>라는 메세지는 제대로 전달 하고 있다.
 끝으로는 등장하는 영화 장비와 기술. 사실 내가 다큐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너무나 매니악한 분야라서 엄청나게 신기한 장비들로 촬영하니까(사실 보도 다큐보다는 자연다큐가 더 그런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에서도 열감지 카메라나 미군용 감시 카메라 같은 것들이 등장해서 한 1초지만 두근두근하게 해준다.

하지만 환경 운동의 영화들이 다들 그렇듯 이 영화의 약점은, 그 객관성과 과학성의 문제일텐데, 일단 일본에서 가장 먼저 제기한 반론은, 돌고래 고기가 수은 중독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증거가 없다는 것. 다큐에서 제시한 논리를 따라가더라도, 수은 중독을 이야기하자면 먹이사슬의 상위 계층에 있는 동물의 고기는 모두 수은 농도가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과학자들이 증명해 낼 이야기;; ) 그리고 전통 문화와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주장에 대한 것도 물론 나올만한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왜 돌고래를 보호해야하는가? 단지 인간과 친해서?>인 듯하다.

2. 해양 자원의 보호를 위한 노력
  1)문제; 바다 자원의 남획
    사실 얼마전에 UN 도하 회의(CITES)에서 참다랑어의 수입 수출을 금지하자는 것이 논의 되었었다. 참다랑어의 개체수는 1970년대 이후 40년간 74%가 줄어들었고, 이 참다랑어의 최대소비국은 알다싶이 일본, 전세계 소비량의 80%를 쓰고 있단다. 그렇지만 UN 회의에서 수출입 금지에 찬성한 국가는 단 3국가(미국 캐나다 모나코). 일본은 반대한다 치지만 다른 국가들은 왜 수출입 금지에 반대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참치 잡아다 일본에게 파는 것이 돈이기 때문. (참고로 우리나라는 일본 대만과 함께 참치 3대 어획국 중에 하나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참다랑어가 멸종위기 종일까? (참고로 말하면 참다랑어(bluefin fish)는 그렇다. 길에 널린 참치 통조림을 멸종위기 종으로 만드는 거에요? 라고 물어보면 그건 황다랑어. 다랑어 종을 우리 나라에서는 모두 참치로 부르며 그 중 가장 귀한 것이 참다랑어로 주로 횟감으로만 쓰인단다) 미국,캐나다, 모나코는 그렇다고 말한다. 일본측의 주장은 말도 안돼! 아무도 개체수를 샐 수 없는데! 이다.

 문제는 바다 자원, 그 중에서도 생명체인 어류의 경우 걔네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그 개체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가 합의 하에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자원인거고, 그렇지만 그 합의가 잘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하지만 참다랑어가 사라지고 나면 누가 가장 아쉬워 할까? 참다랑어는 이제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 참다랑어회는 너네는 못 먹는다, 라고 후손들에게 말하는 일본의 기성 세대일까? 아니면 참다랑어가 뭐에요? 라고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 일까.

 비슷한 경우가 이미 국제 회의상에서 금지 된 고래의 포경에 관한 것이고, (고래는 식용으로 포획하는 것이 금지 되어있다. 단 학술적 연구를 위해서 잡는 것이나, 우연히 고래가 그물에 걸려 사망한 경우에는 그 고기를 식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 <The cove>가 말하는 돌고래 사냥에 관한 것일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자원에 대해서 case by case로 해결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과연 어종이 먼저 없어질 지 국가들이 합의에 먼저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바다 자원 중 생명종의 문제가 가진 문제 일 것이다.

 2)국가적 수준에서 국제적인 노력의 실패
 이번 UN CITES에서 참다랑어의 수출입 금지안이 부결 된 사건에서도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어떤 동물 종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합의에 도달하기 아주 어렵다. 각 국가내의 문화나 가치관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에 따라. 경제 발전 정도에 따라 의사가 달라질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에 관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것이 미국과 캐나다 인것도 그렇고 대부분 그 동물을 수출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먹고 살아야지 무슨>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지만 늘 경제적인 악력이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닌데, 예를 들면 고래의 포획에 관해가장 반대하는 나라는 호주란다. 호주에서는 고래를 구경하는 관광상품이기 때문. 그렇지만 어느 북반구 국가가 그 금덩어리를 잡아다 먹는 걸로 쓰니 으르렁 거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문제에 직접 관련되는 나라가 있고 직접 관련되지 않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나라가 국제회의에서는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문제. 영화에서 IWC회의를 반코메디 수준으로 그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이다. 일본과 같이 <저는 생선 없이는 못살아요>라고 말하는 나라도 있지만 <그 생선이 뭐에요? 우린 걔네 본적 없지만 잘 살아왔다구요! 그러니 잡아도 별문제 없지 않겠어요?>하는 나라가 있는 것이다. 원래 그런 생각인데 일본 등에서 반대표를 던저 달라고 돈까지 쥐어주니 이건 아주 누워서 떡먹기다. 

그렇지만 과연 일본과 같은 생선의 주수입국이나 주수출국이 나쁜걸까? 사람이 먼저 먹고 살아야지! 이거 못 팔면 우린 굶어죽는데! 라고 어느 국가의 어부가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빙글빙글 돌고 도는 난제로 들어가는 것이다.

3)금지를 강요할 수 있는 제재수단의 부재
 또 하나의 문제는 금지 조약을 발효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금지를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데 있다. 일단 국가 수준에서는 <나는 그 동물의 사냥을 금지시키는데 반대하는걸요>했기 때문에 그 동물을 그 나라에서 계속 잡으면 어쩔 수 없는 것.
그에 대해서는 지금 많은 환경 보호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해결책은 아주 미시적인 것이다. 국가 수준의 금지를 못하더라도, 개인들이 공감하면 된다는 것. 포경을 금지한 조약이 만들어진 계기도 어떤 영국 사람이 <고래의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배포한 것이 환경 운동이 급물살을 타게 된 계기였다. 또 예전 미국에서도 바다 거북이 그물에 걸렸을 때 빠져 나갈 수 있는 개폐구를 달아놓은 그물을 사용하는 어선에서 잡은 물고기를 가공한 식품에만 바다거북 스티커를 붙임으로서 소비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 적이 있다. 물건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이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선택하게 하는 것만이 보호할 필요가 있는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은 아주 정확히 The Cove에도 적용 되어있다. 일본인들이 타이지 마을에서 그렇게 돌고래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자신들이 먹는 고래 고기가 사실은 제대로 된 식품검사를 받지 않은 돌고래 고기라는 것을 안다면, 분명 돌고래 사냥에 반대할 것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홈페이지에 와서, 싸인해주세요. 가능하면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이 영화는 일본에서 상영이 제한되었다)
www.takepart.com/thecove

3. 문화 다양성의 문제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각각의 문화가 다르다는데 있다. 우리는 <어떤 개>들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사실 우리가 치와와를 고와 먹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나라들은 개들이 얼마나 훌륭한 인간의 친구인데! 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고래를 사시미 감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주 아이들은 고래를 요트 타고 바다에 나가 구경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네는 원숭이 뇌도 먹고 제비의 집도 먹는다. (제비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제비가 집을 만들기 위해 죽어야 하는게 문제다) 모기 눈까지 먹는 문화가 있는데 뭘 이걸 하나하나 따지고 있겠는가.
 The cove에서 타이지 마을 사람들은 돌고래를 잡는 것이 자신의 전통 문화라고 이야기하는데 영화 제작자 측의 주장은, 도쿄나 오사카등 대도시 사람들은 돌고래를 먹는거라고 생각 안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전통 문화도 있습니까? 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있다. 내 생각에 북경 사는 사람이 티벳 아이들이 뭐 먹는지 신경 안쓸꺼 같다. 우리나라도 고래를 먹는다. 울산이나 포항가면 고래 고기 파는 거리도 있단다. 그렇지만 나는 고래도 먹는다는 걸 대학교때 알았다. (니가 멍청한거야 -_-; 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나는 그 영화에 등장하는 <돌고래를 먹는다구요?>하는 도시 아이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전통 문화라는 타문화를 존중하는 것과 동물에게 잔인하게 대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쉬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동물이 지금 멸종 위기라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한다면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돌고래는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걸까?

4. 객관성의 확보와 지구문제.
1) 개념의 일치 문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만큼 가장 합의가 안되는 쟁점은, <어떤 것이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래는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동물일까? 북극곰은? 돌고래는? 참다랑어는? 개는?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다고 말할 때의 기준도 아주 다양하다. 고래/북극곰/참다랑어는 멸종 위기라서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단다. (반대는 걔네는 절대 멸종위기가 아니라는거다) 개는 인간에게 친근한 동물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단다 (반대는, 너는 개를 키우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나는 뱀을 키운다, 이다. (세상에는 심지어 바퀴 벌레를 기르는 사람도 있다))
  고릴라/침팬치/돌고래 등은 걔네가 지능이 높기 때문에 (돌고래의 지능은 사람과 비슷하다.) 보호해야한단다. 
  과연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동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보호해야할 가치의 기준을 정한다고 해도 그 미묘한 정도의 차이는 또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2) 과학적 타당성의 확보 문제
   또 하나의 객관성 문제는 과학성의 문제이다. 과연 참다랑어나 고래는 지금 멸종 위기인가? (지구에 몇 마리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비슷하면서도 아주 오래된 분쟁 거리를 우리는 모두 안다. 과연 지구는 인간 때문에 온난화 되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머리를 잡고 <아 답이 안나오네>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The Cove에서는 이런 문제도 나온다. 과연 돌고래를 먹는 것이 수은 중독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는가? (사실 문제는 돌고래 고기 자체보다는 그 돌고래 고기가 고래 고기로 둔갑해서 팔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식품 검사를 받지 않는다는데 있다. 기준치보다 높은 수은이나 다른 독성 성분이 함유된 고기가 마음대로 유통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인 두 사람이 나와서 학교 급식에 고래 고기를 넣지 않도록 해달라고 양심선언을 한 것도 이런 위험성 때문일 것이다.)  
   알다 싶이 과학이란 그 자체가 객관적이기 그지 없다기 보다는 과학자의 데이터 해석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결국 개인의 의견이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돌고래 고기는 먹으면 안되는 걸까? 돌고래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동물일까?
  이 어려운 문제를 지금의 환경 운동가들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한다. <고래 고기>라고 말하지 말고 <돌고래 고기>라고 말해. 그리고 소비자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자고! 라고. (그래서 돌고래를 잡는 것에 대한 반대 다큐 영화는 나와도 우리나라에서 개를 잡는 것에 대한 반대 다큐는 안나오나보다. (다들 개인걸 알고 찾아가서 먹고 있으니까? )

5. 기타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탔을 때, 일본에서 나온 많은 반응 중에 하나가 나에게는 인상 깊어서 남긴다. 어느 앵커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과연 일본 내에서 이런 다큐가 만들어 졌다면 최고의 영화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 과연 이런 영화가 만들어 질 수는가에 대해서 반성 해 보아야 한다고.
  비판과 이의 제기라는 문화에있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큐 제작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는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남의 바른 소리는 쓰더라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언제나 미국 문화의 가장 강한 힘 중에 하나가, 비판자를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미국의 국제 정치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난자는 노엄 촘스키인데, 노엄 촘스키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의 교수라고.
  우리나라는 어떤가. <반대? 허?>라는 태도가 당연한 것이 되어있어서 씁쓸할 때가 있다. 진중권씨가 결국은 모든 교수직을 잃었을 때, 진중권씨의 팬이 아니더라도 씁쓸한 것은 나 뿐 만은 아니지 않을까?
 과연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그 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받았을 때, 우리 나라는 반성의 멘트 중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있는 건지도 생각해봐야할 듯하다.

6. 덧,
 나의 사고방식은 어느정도 미국애들이랑 비슷해서, 쪼개서 생각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고래 고기의 수요가 부족해서 돌고래를 잡는 것이 현실인걸. 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제대로 소비자에게 <이건 돌고래에요. 고래 고기랑 맛은 비슷해요>라고 해야한다고. 그 다음은 소비자의 선택의 문제.
 그렇지만 정말로 <피바다>를 보고 나니 The cove의 제작자측의 편을 들고 싶어지는 것은, 아마도 잘만든 다큐 영화의 힘일 것이다.

'영화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0) 2014.04.06
부당거래  (0) 2010.11.09
Sting (1973)  (2) 2010.06.12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 필립 클로델  (1) 2010.03.20
Posted by aeons
영화관2010. 3. 20. 23:59

I've loved you so long time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감독 필립 클로델 (2008 / 프랑스, 독일)
출연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엘자 질버스타인, 세주르 하자나비시우스, 로랑 그레빌
상세보기

1. 그러니까 어제(2010. 3. 19)는 자체적으로 결정한 영화 보기의 날이었는데, 제목에 완전 꽃혀서 감독을 봤더니 필립 클로델이기에 그 사실을 발견하고 낼름 봐줬다. 음.. 필립 클로델이 누구냐고? 내가 본 가장 깝깝했던 소설의 작가;;
(그에 관한 포스팅은 여기: 2009/11/27 - [서재] - 회색영혼-필립클로델)

2. 필립 클로델의 글은 회색 영혼 단 하나를 봤지만, 조금 더 생각을 발전 시킨 듯하다. 그러나 회색 영혼과의 공통점, 그러니까 내가 본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 <지독한 사랑>이야기.

3. 이야기는 자신의 6살 난 아들을 죽인 죄로 15년간 형무소에 있다가 출소한 줄리엣의, 출소 후의 삶을 그린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여동생 레아가 그녀를 자신의 집에 있으라고 해줬고, 레아의 가족(남편과 아이들과 시아버지)과 친구들(미셸과 그 밖의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의 줄리엣은 자신에 대해 방어적이고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지만 아주 소소한 사건들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된다. (내가 좋아했던 포인트는 처음에는 아들을 죽인 여자라서 자신의 아이를 절대 맡길 수 없다고 하던 레아의 남편이, 어느날 자연스럽게 줄리엣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는 그 순간.)

4. 줄리엣이 왜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가 밝혀지는 플롯이 주내용이고, 그래서 마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진정한 사랑>은 <줄리엣의 아들 피에르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레아의 언니 줄리엣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레아는 줄리엣이 감옥에 가고 나서, 모두들 그녀를 잊으라고 하지만, 하루에 단 한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언니를 생각하고, 언니가 한 짓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레아는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때로 분노하고 때로 (줄리엣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에) 속상해 하면서.
그래서 사실은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는 영화속에서 두 자매가 피아노를 같이 치며 부르는 동요(?)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당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거에요")라는 곡은 줄리엣과 레아, 이 자매의 주제곡인 것이다.

5. 포레는 이혼 뒤 부인이 딸을 데려가는 바람에 아주 가끔만 딸과 만나면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줄리엣의 보호감찰관이다. 포레는 계속해서 발원지를 알 수 없는 무슨 강(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_-;)을 찾아가는게 자신의 목표라고 말한다. 엄청 큰 강줄기인데, 요즘 세상에 미스테리란 없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그 강의 발원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사무실에 앉아서 일이나 하지 말고 그 강의 발원지를 찾아나서야겠다고 언젠가. 어느날 미셸이 <그러세요>라고 대답하고 포레는 잠시 멈칫하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나는 <포레와 그 발원지를 알 수 없는 강>에 대한 에피소드가 정말 이 영화가 "작가가 만들었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포레의 선택을 알고 나서야 포레가 그렇게 찾고 싶었던 <발원지가 없는 강>이 뭔지 알게 된다.
<발원지가 없는 강>이라고 쓰면 영화를 안 본 당신도 알 수 있다. 살아있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발원지가 없는 강>을 가지고 있으니까.

6. 그에 비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남자 미셸(레아의 동료 대학교수이다)이 있다. 이 남자, 여자가 다가오지 말라면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파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남자다. (현실에서는 도대체가 매력없는 놈이지만, 가장 괜찮은 남자이기도 하다.) 그는 문학교수라서 그림으로 세상을 보고, 소설로 세상을 본다. 남들이 모두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또 줄리엣을 찾아올지도 안다. 제 발로.
"줄리엣, 있어요? 레아? 줄리엣? 여기 있어요?" 라는 목소리가 마지막 장면에서 들리면, 줄리엣과 레아가 눈물을 멈추고 "네.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하는거다.(엄청 로맨틱한 장면인거라구!)

7. 아무튼 결론은 어른들의 사랑은 노력과 이해와 기다림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걸까? (요 한 문장 보고 필립 클로델이 나에게 화낼까? 그전에 그가 한국어를 배워야겠지?)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뭔가 깨닫고 싶거나, 그의 <지독한 사랑>이 뭔지 느끼고 싶은 사람은 영화를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또 "니가 추천하는 영화는 다 왜 이래?"라고 원망만하지 말라고 하고싶지만, 해도 된다. 내가 어쩌겠어 -_-; )

덧, 누구나 다 "이런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해"라는 것들이 있을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들의 이상적인 사랑을 하고 있거나 경험했을까.

'영화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0) 2014.04.06
부당거래  (0) 2010.11.09
Sting (1973)  (2) 2010.06.12
The Cove: 슬픈 돌고래의 진실  (3) 2010.03.22
Posted by aeons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사랑하는 딸에게
 이 편지를 다 쓰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내가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예전부터 네게 꼭 들려주고 싶었단다.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인생은 자신의 주인을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가끔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용감하게 수 많은 일들을 시도했지. 내가 그 속에서 얻은 가르침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똑똑하고 독창적이고 재치있는 네가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할 테니까. 
 
내 인생에는 나에게 호의를 보이면서 소중한 가르침을 준 사람들도 있었고, 악의를 보이면서 세상이 온통 핑크빛만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깨우쳐준 사람들도 있었단다.
나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 왔고, 죽기 전까지 앞으로도 많은 실수를 저지르겠지. 하지만 나는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내 무능력으로 인해 언짢은 상황이 벌어지면, 그 책임을 인정하고 나를 먼저 용서한 다음, 내 오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사과하는 법을 터득했단다.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으니 회개하는 것 말고는 달리 드릴 게 없지만, 하느님은 내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주시겠지.
 네게 닥치는 모든 일들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어도, 그로 인해 약해지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는 있단다. 누군가의 구름 위로 떠오르는 무지개가 되렴. 불평은 하지 말아라.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바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네 생각을 바꾸거라. 그러면 새로운 해답이 떠오를꺼야.
 푸념은 하지 말아라. 푸념은 가까운 데 먹이가 있다는 걸 사나운 짐승한테 알려주는 것 밖에 안되거든.
 죽기전에 이 세상을 위해 뭔가 근사한 일을 하는 것도 잊지말고.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은 아들 하나뿐이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딸이 있다. 너는 흑인이고, 백인이고, 유대교도 이고 이슬람교도이고, 동양인이고, 스페인어를 쓰지. 아메리카 원주민이고 알레우트 족이고, 통통하건 말랐건, 예쁘건 평범하건,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너희 모두가 내 딸이란다. 자, 여기 내가 너희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상세보기


'나른한 오후의 수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Joshua Tree  (5) 2011.07.09
배꼽의 때.  (2) 2011.02.20
엄마의 위로  (1) 2010.11.26
Tower of Power- Soul with a capital S  (1) 2010.04.07
작지만 확실한 행복  (0) 2010.03.15
Posted by aeons

1. 내가 바라는 게 엄청나게 대단한 건가? 라는 생각을 한다

2. 시험에 대해서가 아니다. 시험은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보다는 불확실성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는 문제들에 대해 그렇다. 예를 들면 도서관 옆자리에 제발 담배 냄새가 지독한 남자만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지난 번에 품절이었던그 물건이 오늘은 제발 가게에 남아있는 것, 버스나 지하철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 것, 기왕 할 결혼이면 내가 갈 수 있도록 내 시험 끝난다음에 하는 것, 기분 나쁘게 실실 대는 저 변태가 제발 쫓아오지 않는 것, 꼴베기 싫은 애랑은 다시는 연락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에.. 또..

3.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거야?"라는 원망 섞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건 언제나 저 바램들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서관 옆자리의 남자는 담배 냄새가 지독한 것은 물론, 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떨어대서 마치 거대한 캐스터네츠가 열람실에 설치된 듯하고-게다가 내 바로 옆자리다!- 지난 번에도 품절이어서 엉뚱한 책을사들고 나왔는데 오늘도 품절이라 나는 교보에게 계속 내 용돈을 바치고 있고, 버스나 지하철은 왠지 "눈 앞에서 놓치는 것"이라는 내재적 특성을 가진 것들 같다. 그러나 다음에 갈 결혼식은 4월 24일이니 이래서 내가 좀 S선배를 예뻐라 한다. :)

4. 내가 바라는 건 몽땅 어마어마하게 거창한 건가부다, 그래서 절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않을 거라고 생각해버리자, 라고 마음 먹은 오늘의 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다. 비록 그의 초창기 작품들에 대해 삐딱한 의견을 지니고 있으나, 언제 읽어도 수필은 달필. 어쩜 이렇게 몇글자 안되는 이 짧은 글로 깔깔깔깔 웃게 만드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작지만 확실한 행복(3.13)
작지만 확실한 행복 상세보기

5. 오늘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생선까스"가 나왔다는 것이다. 점심으로. (도서관 식당이라는 것은 "백반"과 "돈까스"라는 두가지 선택권만이 존재하는 나라다 가끔 민족 해방 후 우리 조상님들이 미국편을 들지, 소련편을 들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느껴질 정도로 곤란한 상황에 쳐할 수 있는 세계랄까. 조상님들은 나라를 반으로 가르셨지만, 3천원짜리 밥에 타협점이란 없다.) 나는 생선까스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데-내 돈주고 사먹은 일은 없다.-이상하게도 도서관 반찬으로 나오는 생선까스만은 너무나 맛있다. 이 맛을 나 혼자 밖에 모르는 것이 억울할 정도다.(혼자밖에 모르니까 허풍떠는 거다) 오늘의 반찬은 생선까스-무말랭이 무침- 배추 겉절이-제육볶음 이었으니 제육볶음을 제외하면 전부 내가 좋아라하는 반찬. 게다가 밥을 먹으면서 책을 봐도 구박할 사람도 없다. 소리내어 깔깔 대면서 웃어도 아무도 나를 모른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깔깔 대며 웃게 해주는 것도 좋다.

6.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는 <전학생이 부러웠던 초등학교 시절>과 <플래카드에 얽힌 추억>. 이글을 올리면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소송을 걸까. 그는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문학사상사에서는 걸어올지도 모른다. 소송은 좀 무서운데



7. <데모 열풍이 끝나고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글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이라는 것은, 특별히 대의 명분이나 불변의 진리나 정신적 향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요컨대 예쁜 여학생과 데이트 하면서 맛있는걸 먹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8. 나도, 지금(토요일 오후 1시반!) 출발하면 잘생긴(?과연?) 남자(학생이라고는 차마 할 수 없다)(문제 1)"들"인 것 2)여자도 있다는 것. 일까?)과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걷고, 놀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는데!
그렇지만 입신양명이라는 대의 명분과 영어라는 불변의 진리, 경제학을 통한 정신적 향상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랄까.

9. 아. 마지막 두 줄 때문에, 손에 잡았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어디 갖는지 모르겠다.

10.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주 큰 바람이 확실하다.

덧, 이글이 쓰여진 것은 3월 13일 오후 1시반

'나른한 오후의 수다 > 작지만 확실한 행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Joshua Tree  (5) 2011.07.09
배꼽의 때.  (2) 2011.02.20
엄마의 위로  (1) 2010.11.26
Tower of Power- Soul with a capital S  (1) 2010.04.07
딸에게 보내는 편지  (0) 2010.03.16
Posted by aeons
노트/단어장2010. 3. 12. 23:04

1. 회상(回想):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추상(追想) ((동아 새국어 사전))
  
 영어로 회상을 찾아보면 4가지 단어를 대강 뽑을 수 있는데, retrospect, reminiscene, memoirs, flashback.
   reminiscene는 일반적으로 <회상>하다에 가장 가까운 단어로 주로 기쁜 일, 즐거웠던 추억들을 돌이켜 생각하는데 쓴다. 반면 retrospect는 주로 in retrospect의 꼴로 쓰여서 과거에 대한 후회나 반성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In retrospect, I would not do it. 이런 식?
   memoirs은 주로 유명인의 회고록이나 유명인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 것을 말하고, flashback은 나머지의 "회상"과는 좀 다른데, 주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장면이 과거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혹은 그 와 같이 현실에서 갑자기 과거 생각이 샤샤샥 스쳐지나갈 때를 말한다.

2. 회상(回想)이라는 단어와 땔레야 땔 수 없는 아이는 이놈, 바로 기억(記憶), 동아 새국어 사전은 이렇게 풀이한다.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외워둠. (에잉 낭만없는 국어사전 같으니). 뭐 생물학 사전은 더 낭만없게 설명한다. 학습한 것이나 경험한 것 등의 정보를 축적하여 나중에 그것을 재생할 수 있게 하는 대뇌의 기능.우리가 익히 아는 영어단어 memory.

3. 또 못 그리는 그림을 그려 차이를 설명하자면
 
<정말 타블렛이 필요하겠군요 -_-; >

3. 알다싶이 언어의 세분화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영어가 긍정적인 일/부정적인 일에 쓰는 단어가 다른데 한글을 비롯하여 한자문화권은 모두 회상(回想). 사실 오늘 이놈의 회상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오늘 아침 회상(回想)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해서.
여기서 문제, 그렇다면 오늘 아침 내가 혼자 중얼거린 노래는 누구의 회상일까요?

(1) 산울림의 회상
 
 
(2) 임지훈의 회상
 

** 김성호 버전도 있어요**
 

(3) 터보의 회상
 

4. 물론 부활의 회상도 있다는 생각이 Youtube를 뒤지니까 들었다.. 아무튼 그렇지만 우리나라 회상은 몽땅 다 헤어진 이야기. 다들 왜 헤어지고 난리야? 라고 생각하니,
사실 지금도 만나면 <회상>할 동기는 줄어든다. 현실은 아릅답지 않고, 추억에는 낭만이 있는 법이니까. 마치 오늘 같은 날에는, 80년대 가요가 더 좋은듯이 느껴지듯이 말이다.

5. 터보의 회상 중에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지>라는 부분이 있지 않나? 저런 말은 어느 나라 말로나 관용어구처럼 존재하는 게 가끔 신기하다.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걸까. Things will get easier as time goes by.
하지만 이에 대해 앤디 워홀이 이의를 제기했다. 앤디 워홀이 말하기를,

"그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바꿔야한다"

6. 어제 무소유하고 싶어서 침대에서 데굴데굴 탄천 가를 화다다다닥 달리고도 못하겠다 싶더니 오늘 갑자기 평정심이 찾아든다. 이제는 놓아줄 때가되었음을 깨닫고,내가 마음을 먹기만 하면 시간이 많은 부분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과거에 Sun이 말했었다
"지중해의 파도와 태양, 그리고 시간이 너를 도와줄꺼야!!"

7. 내가 흥얼거린 것은 산울림의 회상. Sun이 한 말은 "너도 까매질 수 있어"

'노트 > 단어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장과 진보(growth and progress)  (1) 2010.03.10
Posted by aeons
나른한 오후의 수다2010. 3. 12. 00:20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1.  꽤나 오랜만에 탄천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의지박약에 타고난 체육인이 아니므로 적당히 5km.(첫날이잖아 -_-; 라고 생각하며)  기분은 상쾌하나 잠은 어떻게 잘지 고민인 지금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중가의 여행期)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했고, 분을 내 놓은 채 내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보내는 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2. 모든 애정은 집착을 동반한다. 독점욕 없는 애정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트로이 전쟁은 안 일어났을 거다. 수많은 젊은이도 죽지 않았을 꺼고, 우리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도 몰랐겠지)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무소유"를 읽었을 때는 내가 별반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그것은 사실 커서도 변함없는데- 아, 제길, 그런데 나의 문제는 사람 욕심이다. 스님, 사람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버리나요, 라고 묻고 싶은 오늘, 대답은 S가 대신해준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쟈 아픔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오는듯>
(우리의 대화는 80byte)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3. 하지만 사람은 소유할 수 없는 존재고, 남의 속은 열길 물속보다 깊어서 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고, 나이를 쳐먹었더니 다들 마음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차서 straightforward하게 표현도 안해준다. (이렇게 투덜거렸더니 L이 상담해줬다 <넌 왜케 학습 효과라는 걸 모르냐? 이제 돌려 말해도 다들 알아먹는 나이인거야>.)
그리고 가끔 내 것이 아닌 사람에게도 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물스물 멀어져 떠나가는 그대를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아프다.
사람에 대한 욕심은 소유하지 못해서 더 괴롭다. 소유할 수 없어서 무소유 할 수도 없으니까.

4. S의 조언에 따라 무소유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서재에서 찾으려하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얇디 얇은 범우사 문고판이라 어느 책 사이에 끼워져있으면 어쩌지라고,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집착하며, 도대체 아빠 마음대로 분류해 놓은 서재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드디어 찾아냈을 때의 이 기쁨! 오! 찾았다! 스님, 소유는 기쁨을 주네요. 역시 저는 그저 범인인가봐요.

5. 그렇지만 이 모든 욕심을 다 드러내고 홀가분해졌으면 좋겠다는 "무소유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요즘. 나의 무소유를 실천하는 방법은 간단. 뛴다. 숨이 헉헉 찰때까지. 나는 체육인이 아니라서, 숨이 헉헉 잘도 찬다. 

덧,  글의 발췌는 법정스님 "무소유"
Posted by aeons
노트/단어장2010. 3. 10. 00:54

1. 진보(進步)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발전하고 있는 상태나 특정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 이걸 옥스포드 영영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Progress: n. 1. the process of improving or developing, or of getting nearer to
                       achieving or completing something.
                     2. movement fowards or towards a place
  
2. 비슷한 말로 성장(成長)이 있다. <자라나다>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커지다>라는 뜻. 이 단어에 대해서는 옥스포드 영영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Growth: n. 1. (of people, animals etc.) growing physically, mentally, or emotionally
                  2. an increase in the size, amount, or degree of sth

3. 그림으로 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저도 타블렛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4. 그러니까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면 <진보를 꿈꾸는>것이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꿈꾼다면 <성장을 꿈꾸는> 것이다. 진보에 관해서는 유시민씨가 멋진 말을 남기셨다
 "진보를 믿는 것은 역사가 어떤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당면한 과제를 인식하고 불합리한 사상과 제도를 고쳐 나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中-

5. 얼마전에 Y랑 말했다. 도란도란. <예전에는 이랬었어. 지금 생각하면 철 없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돼. 이해할 수 있게 됐지. 지금 생각하면 웃겨. 지금부터 노력하면 되지>같은 이야기들. 그리고는 불쑥 Y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 게 맞겠지?"

6. 스스로가 참 나약해서, 극도로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나는 성장도 진보도 아니라 갈피를 못잡고 바닥을 더듬으며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는 그 나약한 모습이 싫어서 아니더라도 의젓한 척 굴어야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좀 봐주라, 나 죽겠다, 너만 있으면 난 마음이 편할 거 같은데, 라는 배째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성장이 아니라, 쪼그라 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7. 이렇게 변명할 수 있다. 남에게 기댈 줄 알게 되는 것도 성장이야.

8. 사실 성장이든 진보든 어렵기는 매한가지. 머리가 커 질 수록 고집만 세져서, 무수한 제자리 걸음 끝에 나아가는 그 한치를 위해 내가 노력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찾아오고는 한다. 세상에 살던대로 사는 것 만큼 편한 것이 또 없다.

9. 어떤 사람은 진보/성장하기 위해 진보/성장를 위해 노력한다. 진보/성장을 위한 진보/성장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뚜렷한 목표나 이상이 있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어느 것이 동력이 되든 간에,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만큼 멋있는 것이 없다.(지극히 주관적인 내 의견) 방향도 방법도 다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다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키는 더 이상 안 클지 몰라도 마음은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0. 그래서 노트 구석에다 이런 말을 적어놨나보다. 오늘 오랜만에 노트를 보다가 발견했다

Your ideals will never be met. But sometimes, however imperfectly, you can make progress. Even it is as if yo are moving towards an unattainable horizon.

'노트 > 단어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상(回想)  (2) 2010.03.12
Posted by aeons
노트2010. 3. 10. 00:16
난 정말 정치는 나몰라라 하고 살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지만, 사회현상에 대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순수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글을 읽었다. (아무튼 이 글의 내용은 이책에서 나온것)

최장집-민중에서 시민으로(03.07)
민중에서 시민으로 상세보기

내가 궁금했던 것은, 하나는 그렇게 지지율이 높다는데 내 주변에서는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을 그다지 많이 발견할 수 없었고, 그렇게 지지율이 높다는데, 정책은 산으로 가고 반대는 말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모두 2008년의 대난리를 기억할꺼다 -_-; 난 서울 시내에 물대포가 등장하고 사복 경찰이 시청앞 광장에 돌아다니는 시대에 내가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특히 콘크리트로 장벽 쌓은 것을 신문에서 보고는 정말 식겁했었다-물론 그 창의성은 높이 살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들 <모든게 다 노무현 탓>이라던지 <좀 나쁜 짓 좀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들이 너무 유행 했으나 앞의 말도, 도대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뭘 그렇게 잘 못했는지 모르겠고, 도대체 이번 정부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또 어디서 나오며, 다른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의견도 공감하기 힘들었었다. (역시 어른들의 정치 세계는 어려워요 >_< 랄까)

여기까지 나의 의문점들을 마음에 담고 <민중에서 시민으로>의 6장 <이명박 정부의 등장의 의미> 를 살펴보자. 일단 최장집 교수님은 17대 대선의 큰 특징을 4가지로 정리한다.

 
<17대 대선의 특징>
      1) 회고적 투표-유권자의 복수
      2) 지역구도-아직도 존재하는가?
      3) 보수화-과연 보수화 된걸까?
      4) 투표율 저하
 
이제 그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1.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 model)
    - 정치학에서 투표의 성격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는데 하나가 회고적투표(retrospective voting)이고 다른 하나는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이다. 전망적 투표란 앞으로의 미래에 어떤 정책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는 미래의 상황에 대한 바램으로 그것을 이루어 줄 성격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 반대로 회고적 투표는 기존 정부가 마음에 안들어서 반대당에게 몰표를 주는 현상으로, 기존 정부에 대한 평가는 경제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 17대 대선은 기존의 노무현 정부가 잘못 된 정책을 펴왔다는 데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 강한, 회고적 투표였다고 볼 수 있다.
     - 물론 노무현 정부의 경제학적 지표를 살펴보면 크게 잘 못 된 것은 찾기 힘들다. 실상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파 정부가 지난10년간 꾸준히 실행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그 말인 즉슨 한나라당이 집권했어도 똑같았을 것이라는 이야기)
       문제는 경제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는 유권자의 이념적 헌신(ideological commitment)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아담 쉐보르스키의 이론). 설령 현실적인 업적이 나쁘더라도 투표자의 이념적 가치와 비전이 정부와 일치할 경우 주관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진보파 정부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바란 경제 정책은 결코 신자유주의 정책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투표.

모든게 <노무현 탓>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2. 지역구도 - 아직도 지역 감정이 존재할까
   - 그보다는 계급투표의 성향이 강해졌다고 파악할 수 있다. 그 단적인 반영이 이제 호남vs경남의 구도뿐 아니라 강북vs강남의 구도화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아직도 지역감정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은 계급 구조를 단순히 지역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려는 것이므로 주의해야한다.
 
3. 보수화 - 우리나라 국민이 보수화 되었을까? 
       - 정당에서 내건 정책들이 모두 보수적이었던 것 뿐이다. 
       - 유권자는 시장에서 상품을 사는 소비자와는 달라서 정당이라는 정치집단에서 내 놓은 안들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유권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선호하는 대안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대안의 부족에 대한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투표권이 있는 성인이면 누구나 지난 대선 때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투표율 저하
    -우리나라의 투표율(63%)은 미국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투표율이 저하되고 있다는 서구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도 엄청 낮은 수준(영국 70%+a, 독일 84%, 네덜란드 84%). 유권자 등록제등 선거에 참여하기 자체가 복잡한 시스템으로 되어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2008년 대선의 투표율으 61.6%였다.
     -실상 2등과의 투표차를 언급하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율은 48.7%였고 61.6%*48.7%=30.5%인 전체 국민의 지지율은 선거에서 기권한 37%보다 적은 수준이다.

이게 왜 어처구니 없는 정책들이 나오고 그에 대해 또 격한 반대가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낮은 지지율은 큰 업적을 요구한다는 것은 정치의 일반적인 법칙. 자꾸  <압도적인 지지율>이라고 언론은 떠들어 대지만 도대체 압도적인 지지는 누가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지는 이유도 이것.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도 압도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보다는 정치는 "9시에 ,TV가 하는 이야기"로 파악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어서 진보적 정당이 집권을 이어가는데 실패한 이유도 이야기한다

<< 진보파의 실패 이유 >>
   1) 그릇된 정치적 대응
   2) 집권 세력의 인적 구성상의 특징
   3) 정당 정치의 기반 해체
   4) 경제적 성과 추진

1. 그릇된 정치적 대응
   -2005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signal이었으나 정부에서는 자신의 정책에 대한 숙고 없이 '대연정','개헌'등의 수단을 들고 나왔다. 이것은 유권자를 가르치려하거나 순간적으로 판을 바꾸려는 것밖에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2.  집권 세력의 인적 구성상 특징
   -노무현 정부는 주로 운동권 인사들을 흡수했는데, 운동권의 성향상 이데올로기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경향이 많았다.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말이 정치권 안에서 많았던 것이 이런 성향의 반영이기도 한데, 정치는 역사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 스스로도 말했고 내가보기에도 그런, 그는 이상주의자였던 것이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모두들 그를 좋아했던 것 아닐까) 그가 가진 비전이나 이상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고, 정치는 역사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아,, 이렇게 해서 역시 인간 세상은 믿을 만한게 못되는 걸까 -_-; )

3. 정당 정치의 기반 해체
   -진보파 정부가 꾸준히 추구해온 정치적 개혁은, 당정분리, 원내 정당화, 국민경선제, 지구당 폐지 등이 있다. 이는 정책 산출의 효과 내지는 정치 과정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정책들이었다. 그 결과 오히려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의 정치 참여가 어렵게 되었는데, 사실상 진보주의 정부를 강하게 지지했던 것은 이 계층들이다.

4. 경제적 성과 추진
   -국제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경제적 성과를 내보이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이념이나 복지등의 다른 과제들이 신자유주의 밑으로 포섭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관료 밑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정치와 정치학은 다르니까, 정치적으로 달려들면 나는 정말, 정치는 몰라요, 하고 싶은 사람. 정치는 모르겠는데, 정치학은 재미있는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아마도 정치학은 누구나 하는 지금 현실 세계를 분석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일 것이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의 이상형  (1) 2010.03.30
실패의 빈도와 인상  (3) 2010.03.26
조각 케익 위의 딸기  (5) 2010.03.23
합리적 소비자  (1) 2010.03.06
Tragic Hero : 비극의 주인공  (1) 2010.03.02
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