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2009. 8. 1. 09:46

1. 그러니까 녀석의 끝멘트는 이거였다.
<야, 나 뭐 해야된다. 내가 다음에 또 전화할께>
전화를 끊고 나서 그 "다음에 또"가 해야할 일을 마친 몇 분뒤인지, 집에 돌아간 몇 시간 뒤인지, 아니면 다시 나에게 전화할 기분이 들 몇 일 뒤인지, 아니면 한국에 돌아올 몇 달 뒤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좀 기다려봤지만 3시간이 지난 지금도 전화는 오지 않는 것이, 결국 그의 마지막 멘트는 인사치레였을 것이다.(그렇다고 3시간동안 기다린 건 아니다. 정확히 하고 넘어가자 -_-; ) 칵 때려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시간에 대한 오해에 관하여는 유명한 일화가 많이 존재한다. 중동의 누군가랑 점심 먹자고 약속했는데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상대가 나타났다는 비지니스 일화라던지. 우리는 시침이 하루를 24등분하고 다시 그것을 분침이 60등분하는, 전세계 공통 시각을 위성에서 쏘아주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사실 시간도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파악된다. 앞에서의 예처럼 <점심을 먹죠>라고 말하면 각자 점심을 먹을 시간을 떠올리고, 거기에 그 점심을 먹기 위해 미리 만나야할 시간까지 떠올리니 편차가 커질 수 밖에.
 또 다른 유명한 일화는 90년대까지 존재했던 소위 '코리안 타임'. 늘상 시간에 늦는다고 해서 붙여진 오명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 사람들이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생각하는 <빨리빨리>랑 어떻게 공존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공존한게 아닌가? -_-;) 어찌되었든 장하준씨의 <나쁜 사마리안들>은 '정확한 시간관'이란 산업사회가 학습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찍이 농업사회에서는 정확한 시간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해 뜨면 나와서 일하고, 해지면 들어가서 자고. 서구에서도 시계가 보편화 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이 일어난 뒤로, 동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는 공장이 생기고 나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날 갑자기 처들어온 서양애들이 <시간관념이 이렇게 없어서야!> 라고 탄식해봤자 <시계라는 게 뭔디유?>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밖에. 아무튼 그래서 산업화가 덜 진행된 사회는 언제나 시간관념이 없고, 그래서 언제나 게으르다. 식민지를 건설하러 들어온 모든 민족이 자신의 식민지 주민의 나태함을 투덜거렸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듯, '코리안 타임'은 이제 옛날 옛적 이야기.

3. 필립 짐바르도와 존 보이드가 같이 쓴 <타임 패러독스>는 이런, 개인의 시간관에 대한 책이다. 필립 짐바르도는 그의 유명한 SPE(Standford prison experiment)에서 개인의 시간관에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정도를 훌러덩 언급한다음 얼마전 멋지게 이 책을 냈다.
 요는 단순한데, 개인은 각자, 과거를 어떻게 보는지, 과거/현재/미래 중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아시아권의 자살 폭탄자들은 개인의 성격이 삐뚤어져서도, 종교집단에 세뇌 당해서도,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아서도 아니고, 현세를 초월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뒤의 생을 바라보며 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모든 <자살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안중근, 윤봉길 의사와 같은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들, 수도 없이 비행기를 몰고 추락해댔던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이 자살을 할 수 있었던 대는 완전히 다른 이유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재미있었던 것은, 잦은 지각생들은 주로 현재쾌락형 시간관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은 현재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만을 생각한 나머지, 목표(약속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를 하기 위해 반드시 써야하는 비용(이동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현재캐락형 인간들이야, 라는 대화를 같이 했던 친구 Y가 말했다 <응! 순간 이동만이 해결책이야!> 또, 흡연 마약 도박등에 빠지기 쉬운 것도 현재의 최대 자극을 추구하는 현재 쾌락형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 여기서 응용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딱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현재 쾌락형 시간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

4. 개인이 단 하나의 시간관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간관을 가지고 있으나 어떤 것이 더 강한 성향을 나타내느냐의 문제.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어떤 시간관으로 그 상황을 대하느냐가 문제 인 것이다. 시간관의 종류는 6가지다 (과거긍정적, 과거부정적, 현재 쾌락적, 미래 지향적, 초월적, 현재 숙명적).
가장 좋은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과거를 긍정적으로 보고(강한 과거 긍정적), 미래에 뚜렷한 목표를 가지며(강한 미래 지향적),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에 노력하면서 현재의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란다(적당한 현재 쾌락적).

5. 각 시간관의 특성으로 살펴보면 나는 현재 쾌락적 인간이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강한 미래지향적 인간이었다. (현재 쾌락적 수치는 평균보다 살짝 위였다. (시간관에 대해서는 책에 테스트가 있다) 교육은 적절한 시간관을 개인에게 주입하는 것이니까, 우리 스탠포드(짐바르도 아저씨는 스탠포드 교수였다. 정년퇴직 했지만) 학생들도 주로 미래지향적 시간관을 갖더군요, 라고 말했다. 사회에서말하는 성공에 가까운 사람일 수록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이 많단다.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스트레스 참으면서 머리 빠져가며 일하고 나이 50에 심혈관 질환으로 죽는거지? 라고.

6. 대학교 2학년때인가, MT를 갔었다.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마구 뛰었으나,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지 못하고(정말 영화 주인공 같았다) 기차 꽁무니를 쫓아 달리다가 결국 플랫폼에 덩그라니 남겨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MT 자체는 다음 기차를 타고 무사히 갔다)
 얼마전에 JS오빠가 그러지 말고 미국에 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한번 기차를 놓치면 다시 올라타기 힘들잖아. 능력 있어도 사장 되기 쉽지>. 거기에 나는 대답했었다 <다시 기차를 올라타도 내가 타고 싶었던 그 기차는 아니고>라고. 당시에는 일상적인 대화였으나 마음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종종 생각하는 것은, 살면서 분명 몇번은, 이 기차가 내가 타고 싶었던 것인지 아닌지도 생각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타거나, 아니면 타고 싶었던 기차에 타지 못하고 다음 기차를 타야하는 순간을 제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있는 게 아니라서, 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22살까지 살아넘긴 것도 그렇고, 연애에 있어서도 타인이 바꾸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라는 철학으로, 관계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미래를 확신하게 해 줄 수 있는 상대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연인으로서 내가 부족했던 점을 엄청 알아버렸다랄까. 
 과거 긍정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일련의 사건들에서 포지티브한 교훈을 끌어내자면, O를 만난 후에 나는 점점 시간과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지까지는 시간은 시간대로 나는 나대로 가거나, 시간에 쫓겨 정신없었던 상황이었다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에게 최근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이거다 <후회하게 될까?>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후회를 하든 안하든 중요한 것은, 후회가 찾아드는 순간에 내가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인 것 같다. (준비된 자세랄까?) 이렇게 또 형이상학적인 결론만 내놓고 현실에서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옮기지 않고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지. 심지어 내 마음도 말이다. 나 좀 쉽게 행복할 수는 없나? 라고 생각하고는 혼자 웃어버린다.


착한 사마리아인-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상세보기
타임 패러독스 -필립 짐바르도, 존보이드 (7/29)
타임 패러독스 상세보기







Posted by aeons
서재2009. 7. 22. 00:38

1. 최근의 <읽은 책 목록>에서 소설의 비중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감수성이 메말라가는 것인지, 좀처럼 공감하는 소설을 찾기 힘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소설 자체가 재미없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2.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은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O가 비행기를 타고 떠난 직후 집어 들었었다. O가 떠난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O는 참 아무렇지도 않게 비행기를 타고, 다음에 한국에 오면 보자며 바이바이를 말했지만, 막상 나는 별로 침착하거나 명랑한 기분은 아니었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의 마음이 이렇게 싱숭생숭 하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게 했다. 그 괴로움에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한동안은 못 볼 테니까, 금새 이 마음도 침착해 질꺼야> 뿐이었던 듯 싶다.
붙잡을 기둥 하나 찾지 못한 마음을 위해 12년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를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미도리, 니가 좋아, 봄날의 곰만큼. 이라고 말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 O가 나에게 말해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을 함께 하면서.

3. 굉장히 슬펐던 사건은,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나는 미도리에게 감정 이입하지 못하고,-그렇다고 나오코에게 감정 이입한 것도 아니었다- 하쯔미에게 엄청나게 몰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O는 나가사와 같은 놈이지 절대 <나>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말이 나왔다. 나가사와는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는 사람, 이라고.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적히 포스트잌을 O의 머리에 철썩 붙여놓는다. 망할, 난 평행선 같은 것 그리고 싶지 않고, 자살도 하고 싶지 않은데.
친구의 기억속에서 이미 멀어진 상실의 시대 줄거리를 세세하게 늘어놓은 다음, 나는 하쯔미에게 감정 이입이 너무 되서 괴로웠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 녀석이 대답했다. <넌 하쯔미처럼 예쁘지 않아>. 어, 그래 -_-;

4. 상실의 시대는 결국 비바람이 몰아치던 나의 마음에 아주 폭우를 쏟아붓게 만들었다. 상실의 시대는 나에게 <나는 왜 소설에서 꼭, 비극적인 인물에게 감정 이입 하는가?> 라는 굵직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S에게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를 하자, S가 말했다. 난 꼭 버림 받은 마누라에 감정 이입하는데. 10년 사귀고 배신당한 여자친구라던지. 유유상종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느낀다.

5. O가 떠난지 근 한달이 되어가고, 덩달아 상실의 시대를 읽은지도 한달이 되어가고, 그리고 그렇게 한 달만에, 짧다면 짧은 소설을 읽었다. 오늘. 권지예의 <뱀장어 스튜>. 어디선가 얼핏 본 다음 꽤나 재미있을 것 같아 교보에서 찾아봤는데, 의외로 짧아서 후다닥 읽어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직도 회사에서 야근 중인 S에게 뱀장어 스튜를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프랑스에서 가난한 남편이랑 사는 여자가 2~3년에 한 번씩 한국에 돌아와서 죽어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 남자랑 자는 거야. 라고 말하자 S가 물었다. <근데 왜 제목이 뱀장어 스튜야?>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인 자클린이 만들어 준 뱀장어 스튜래. 피카소가 뱀장어 스튜 그림을 그리고는 거기에, "이 그림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이라고 썼대. 결국 피카소의 안식처인게지. 소설 속에서 주인공 여자가 결국 남편에게 돌아가거든.>이라고 대답했다.


<<La Matelote - Pablo Picasso>>

그리고 S에게 덧붙였다. <나 왠지 모르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

6. 아, 소설을 왜 읽는 지 알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때로는 마음의 안정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내 문제에 공감을 얻기 위해서. 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 정답은 없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문제에 최선의 선택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고 결론 짓는다.

7. 그런데 말이다. 문제가 남았다. 나에게는 돌아갈 남편 같은 것도 없고, 자클린처럼 뱀장어 스튜를 끓여줄 연인도 없고, 그렇다고 O에게 용감하게 다시 연락할 용기도 없는 것이다. 망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덧, 뱀장어 스튜는 저리 간단하게 요약 될 만큼 가벼운 소설이 아니다. 짧은 만큼 한 글자 한글자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서, 굉장히 몰입해서 봤고, 읽은 뒤의 느낌도 매우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7.3)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상세보기
권지예 - 뱀장어 스튜(7.21)
뱀장어 스튜(제2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02년도) 상세보기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Q84,무라카미 하루키  (0) 2009.08.30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0) 2009.08.16
타임 패러독스-필립 짐바르도  (0) 2009.08.01
클루지 - 게리 마커스  (0) 2009.07.27
소설 읽기 (2)-카프카,시골의사  (0) 2009.07.23
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