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저마다 타인에 대해 <인상>을 갖는다. 오랜만에 사전도 찾아본다. <동아 새국어사전>에서:
인상(印像) 1)외래의 사물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감각 (image)
2)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 자취 (impression)
구분 해야할 말은 人相: 사람의 생김새와 형세 (appearance, look))
외모, 행동, 말투, 함께 일어났을 때 일어난 사건 등 아주 수많은 요소에 의해 우리는 상대를 파악하고 저 마다의 기준으로 분류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걘 이런~아이지."
응용 예문을 말하자면, "걔가 원래 그렇지." "역시 이미지란 무서워" 등등등
2. 이미지를 형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한 번 만난 사람은 외모가 이미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지만, 만남이 반복 될 수록 행동이나 말투의 비중이 올라간다. 물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과 격언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모두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모두 산타 할아버지가 누군지 쯤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렇게 말한다
보이는게 전부지. 그럼 또 뭐가 있냐?
3. 한 번 상대가 형성한 <내 이미지>는 좀처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눈을 신경쓴다. (물론 내 이미지 따위 니가 갖는 거지 내가 갖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를 신경 안쓴다.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가장 쓸데 없는 책은 "착한 사람 컴플렉스 벗어나기" 같은 것이다.)
특히나 가장 꺼리는 것은 실패나 실수등 부정적인 면을 보이는 것. 누구나 타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아있고 싶기 때문에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한 사람일 수록 실패나 실수를 보이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되었든 현대의 "공부"라는 것은 빨리 패턴을 찾는 사람이 유리한거고, 실패나 실수가 자신이 형성하고 싶은 "좋은 사람" 이미지에 얼마나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는 지 잘 알고 있으니까.
4. 예를 들면, 자존심이 높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일 수록 자신의 실패를 타인이 목격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는 것은 아예 하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영어 시험에는 100점 맞으면서도 외국인이랑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한국 사람이 만들어 진다.
5. 빈도(頻度, frequency, 어떤 일이 되풀이 되어 일어 나는 정도)가 높다는 것은 그 만큼 신뢰성을 강화시킨다. 타인의 특정 행동에 대해 특정한 인상을 받았을 때,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가 똑같은 일을 다시 한 번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비슷한 류의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럼 그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영어를 못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안하고, 안한다고 생각할테니까(부끄러운가? 쯤의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패턴이 반복되면, 저 사람은 영어를 하지 않는/못하는 사람이 된다. (어차피 못하는 사람이든 안하는 사람이든 쓸모가 없다는 결론에서는 같다) 그러니 만약 타인에게 영어를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싶다면, 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6. 얼마전에 선생님인 K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아이들은 아주 활발해서 배운 것은 그 날 5번씩 써 먹으려고 하는 애들이 있고 어떤 아이들은 도대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도 모르게 조용히 있는 애들이 있다고. 그것은 그냥 기질의 차이지만, 실력이 같은 그 두 타입의 아이들이 있을 경우 주위의 사람들은 활발한 전자보다 조용한 후자의 타입을 더 실력 있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실패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덧, 말없는 남자를 멋있어 하는 여자들의 심리도 이런 것이다. 그녀는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는 타입일 수도 있다. 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다는 것은 이미 깨달았겠지만, 현실보다는 꿈에 있는게 더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그러니까 조용히라도 해줬음 좋겠어 라고 생각하거나.
7. 그러나 실패라는 것은 실행(practice)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 중에 하나다. 태어날 때 부터 할 줄 아는 건 숨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걷는 것도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운다 이 말인 즉슨 누구도 실패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8. 그러나 사람은 정말로 말초적이라서 본대로 믿고 자기가 생각한게 맞다고 확신하고 너보다 내가 너를 잘 알아 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며 살아가고, 그래서 또 대부분은 그 타인의 시선에 벌벌 떠면서 살아간다.
9. 하지만 존재를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가능성이다. 지금은 못 할지 몰라도 거듭 도전하고 셀 수 없이 실패하면서 변화 할 수 있다. (말했다 싶이 태양과 파도 그리고 시간이 모두를 도와 줄테닷) 여기에 관해 Ralph Waldo Emerson이 또 명언을 남겼다
"What lies behind us and what lies before us are tiny matters compared what lies within us."
정리하자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There are more than that meets the eye)
10.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질문이 들어 올 것 같아서 대답을 고민해 봤다.
다음의 전제를 기억한다. 하나, 시끄러운 인간도 좀 참아줘 본다. 둘, 말없는 인간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을 익힌다.
다음의 프로세스를 따라 실행한다. 첫째. 그냥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 던 대로 산다. 둘째, 그러다 상대가 못 보았던 면모를 보이면 깜짝 놀란다. 셋째. 그리고 그 사건은 홀라당 까먹고 다시 세번째단계로 돌아가서 산다. (살던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하다, 어쨌든 나는 최상의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1. 그렇지만 오늘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오늘 그 아이는 종이와 펜 없이 단 두번 만에 내 전화번호를 외웠다.)
덧,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전의 실행의 실패요인을 분석하는 것을 영어로, postmortem이라고 한다. 원래 뜻은 시체해부(autopsy와 동의어). 실패한 사건은 이미 시체인 것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의 실패를 <상대에 대한 내 이미지>안에 담아 놓는 것은 결국 나혼자 시체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랑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덧붙임이 있다면, 어찌되었든 10번과 11번의 과정들은 <사귈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해야한다. 아, 사귈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정하냐고? 하하하. 그것이야 말로 삶의 아이러니랄까?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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