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2010. 12. 13. 18:01

얼마전에 <당신옆에 소시오패스>라는 책을 빌려봤다. "양심없는 그들! 바로 당신옆에 있다!" (무섭지?) 라는 카피프레이즈에 홀라당 넘어가서.

이런류의 심리학책에는 꼭 등장하는 <바로 이런 사람이 소시오패스(3가지 이상 해당 될 때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음)>의 7가지 조건들에 의심스러운 사람을 하나하나 집어 넣어가면서.
참고로 미국 정신 의학협회: American Phsychiatric Assocoiation:APA)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4에 따르면 그 조건들은 1.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함. 2. 기만적이고 간교함 3. 충동적이고 미리 계획하지 못함 4. 화를 잘 내고 공격적임 5.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개의치 않음 6. 시종일관 무책임함 7.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학대하거나 무언가를 훔친 뒤에도 가책을 느끼지 않음. 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럴리가. 아차. 그 다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APA의 정의는 진정한 의미의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를 진단하기 보다는 단순히 "범죄성(criminality)을 더욱 잘 묘사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들과 임상의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추가로 입증된 소시오패스 집단의 특징들을 지적한다. 그 가운데 보다 빈번하게 목격되는 한가지 특징은 말 잘하고 번지르르한 매력으로, 진정한 소시오패스는 이를 통해 비유적으로든 글자 그대로든 다른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 일종의 카리스마를 통해 주변의 대다수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매력적이거나 더욱 흥미롭게 보인다. 즉, 그(혹은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욱 자발적이거나, 열정적이거나, 섹시하거나, 재미있거나, 혹은 더욱 '복잡'해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시오패스 카리스마'는 아따금 강한 자기가치(self-worth)를동반하는데, 이는 처음 보기엔 아주 그럴싸에 보이지만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상하거나 어처구니 없게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언젠가는 세상도 깨닫게 될꺼야." "나를 만난 뒤로는 다른 어떤 연인도 만족스럽지 않을꺼야">(p22~23)
갑자기 그가 아닌 그녀 주변의 수많은 "매력적인" 친구들이 생각나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구의 4%정도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범죄자(=싸이코패스)유형의 인간들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보통 이상의 자극을 추구하고, 병리적인 거짓말과 기만행위, 그리고 기생적인 '친구관계'를 가지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서 태어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서 평생 고 주변의 몇명을 괴롭히며 살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보다 더 크지만 살인보다는 약한 일을 벌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미국에 있었던 스탬프맨(Stamp man:당연히 별명이다)은 단순히 우체국 직원들과 경찰들이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우체국을 털고 우체국 근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감옥에 잡혀들어가고, 다시 나와서 우체국을 터는 삶을 반복했다. 그렇지만 지능이 아주 높은 경우에는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데, 이는 남들보다 더 잔인하고 결단력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들이 위험을 선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하다. 심지어 히틀러나 무가디 처럼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소시오패스의 유형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시어도어 밀런(T.Millon)은 소시오패스의 유형을 10가지로 분류했는데 탐욕적인/부도덕한/불성실한/위험을 무릎쓰는/용기 없는/격정적인/무례한/악의적인/폭군적인/해를 끼치는/으로 구분했다.)

다시 말하면 소시오패스란 애정과 애착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양심없는 애들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정신 질환이 질환의 당사자에게 얼마간의 개인적 고뇌와 비참함을 수반하는데 비해서 소시오패스들은 유일하게 당사자가 전혀 괴롭지 않은 "질병(?)"이다. 소시오패스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아주 만족하며 이런 이유로 치료법도 없고 치료를 받을 생각도 없다. 그들은 단지 세상을 게임처럼 인지하며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이들을 그저 도구로밖에 인지하지 않는다. 무서운 것은 그들이 사회화되면서 타인의 감정회화에 심지어 <일반인보다 더>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거짓으로 애정을 갈구하고 거짓으로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유는 단 하나 "양심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할 때 자기가 가장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시오패스라는 존재들은 왜 생기는 걸까? 모든 인간이 가진 질병이 그렇듯이 이것도 <날 때부터 소시오패스>와 <살다보니 소시오패스>로 구분될 수 있다. 여기에 사회의 문화, 개인적인 경험등이 버무려져서 탄생한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은

어쨌든 이런 25명중에 한 명인 소시오패스, 양심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피하는 것"뿐이란다. 어쨌든 이 책을 쓰신 마샤 스타우트 박사님은 소시오패스 환자보다 소시오패스에게 당해서 마음에 헐어버린 정상인들을 더 많이 만나봤는데, 이유는 명확하다. 소시오패스는 양심이 없으니까 무슨 일을 저질러도 괴로워하지 않는다.(그렇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무척 괴로울 것이다.) 그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범위는 매우 원초적인 것으로 당장의 신체적인 고통과 쾌락 혹은 단기간의 성공과 실패에서 오는 희열이나 좌절이다. 좌절은 분노를 일으킬 수 있기에 종종 소시오패스들도 연애의 실패에서 상실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단지 그들이 그들의 "소유권"을 주장할 물건을 잃어버린데 대한 화남이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잃어버린데 대한 상실감이나 슬픔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Supernatural session 6에서 샘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나는 왠만한 소설책보다 훨씬 몰입도를 높이면서 여기까지 읽고, 담백하게 소시오패스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다음 장은 소시오패스들이 일반인들이 그들에게 느끼는 "동정심"을 최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만약 살다가 소시오패스들을 만나면 "얼른 도망갈 것", "동정심이 일면 당신이 바보", "넌 소시오패스랑 경쟁해도 게임이 안돼", "그들에겐 치료제란 없고 개선도 없어" 라는 조언으로 그녀의 인간다운 연민을 All kill 해버렸다. 결론 또한 완벽하다. "잘 먹고 잘 사는게 최대의 복수다"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소시오패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났더니 Path가 생각났다. 누가 연구했더니 한 개인은 많은 사람들을 알 수는 있어도 진정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인간관계는 50명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와서 만들어진 counter-facebook 싸이트인 path. 오, 50명중에 2명은 확률적으로 소시오패스일테다. 더 많은 수도 있고, 더 적을 수도 있다.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산업화되고 개인화된 사회일 수록 소시오패스의 숫자는 많아진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혹은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이들(별로 많지 않다)/혹은 좀 두려운 상대들을 떠올려봤는데 실상 내가 제대로된 의학교육을 받지 않았고, 형용사라는 것은 아주 넒게 해석될 수도 있고 또 아주 좁게 해석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만약 그 혹은 그녀가  소시오패스라면 나 역시 충분히 소시오패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소박한 웃음의 따뜻함, 누군가와 함께 있음에 대해 감사하게 하는 마음, 상실에 의해 느끼게 되는 슬픔, 이런 것들은 얼마나 소중하며 또 따뜻한가. 만약 누군가 정말로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참 불쌍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언제나 결론은 긍정적으로. 그리고 조언도 받아들이자. 놀지 않는 것이 상책.


덧, 이 글에 나오는 모든 과학적인(?)이야기들은
당신옆의소시오패스 상세보기


덧, 공부하기 싫어서 쓴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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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10. 10. 29. 09:28
2001년, 독일의 로텐부르크라는 마을에서 이상한 만남이 성사되었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마흔세 살의 베른트위르겐 브란데스는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먹힐 의향이 있는 사람을 찾는 인터넷 광고에 응했다. 광고를 올린 사람은 컴퓨터 기술자인 마흔둘의 아민 마이베스였다. 마이베스는 금전적 보상은 없고 단지 체험만 제공하겠다고 했다. 약 200명이 광고에 반응해, 네 사람이 마이베스가 있는 농장을 찾아왔다가 결국 관심이 없다며 돌아갔다. 하지만 브란데스는 마이베스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그의 제안을 들어본 뒤 승낙했다. 마이베스는 이 손님을 죽여, 시체를 토막 낸 뒤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이 로텐부르크 식인종은 체포될 당시에 그 희생자를 20킬로그램이나 먹어치운 뒤였는데, 올리브 기름과 마늘을 넣어요리해 먹기도 했다.
마이베스가 재판에 회부되면서, 이 엽기적인 사건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했고 법정을 혼란에 빠뜨렸다. 독일에는 식인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없다. 피고 측은 가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희생자가 자기 죽음에 기꺼이 동참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마이베스의 경우 '요청에 의한 살인'죄만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안락사로 최대 5년형을 받을 수 있다.법정은 마이베스에게 우발적 살인(manslaughter)죄를 적용해 8년 반의 실형을 선고하여 이 수수께끼같은 사겅늘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항소법원은 형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판결을 뒤집어,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 섬뜩한 이야기는, 이 식인 살인자가 공장식 농장이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기이한 결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정의란 무엇인가 中


 

Posted by aeons
서재2010. 9. 28. 18:52


서울대 주경철 교수님의 글 중 하나에 크게 공감하여 옮긴다. 원래 artlifeshop.com이라는 웹진에 연재한 글 중에 하나인데 찾아보니 웹진은 없어진 모양.

문득 이윤기씨가 돌아가셨고 그러니까 못다 본 그의 그리스로마신화 4.5권을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 스크롤 압박 심함 -_-;


<'나'를 만나는 두려움~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1. 공포 속의 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에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인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나를 아는 일이다."
그렇다. '나'를 아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남을 보기만 하지 진실로 '나'를 되돌아보는 경우란 거의 없으므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낯선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든지 '나'를 직면하게 되는 경우에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다.
언젠가 이런 꿈을 꾸었다.
어둑어둑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시 문이 하나 있다. 그 문을 열자 다시 방이 나오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뒤돌아서 서 있다. 그 사람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웃는다. 그는 누구였을까? 아, 다름 아닌 '나'가 아닌가! 저 앞에 나 자신이 서서 나를 지켜보며 웃고 있다니.
그 공포스러운 나 자신과의 만남.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지만 언젠가는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미 2천 년 전부터 고대 그리스 문명은 이렇게 말해 왔다.
"너 자신을 알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알아가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2. 오이디푸스의 운명
<오이디푸스>의 배경과 기본 스토리는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을 못 가지는 운명이었으나 신의 뜻을 거스르고 기어이 아들을 원했다. 그러자 신은 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운명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작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런 신탁을 받은 라이오스 왕은 목동에게 아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린 아기를 불쌍히 여긴 이 목동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기를 넘겨준다. 마침 아들이 없던 이 나라의 국왕에게 발견된 이 어린 오이디푸스는 결국 코린토스의 왕실에서 자라게 된다. 장성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신탁을 받아보자 역시 마찬가지의 내용을 듣게 된다.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를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로 알고 있었던 오이디푸스는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이 나라를 떠난다. 그는 방랑하던 중에 세 갈래 길에서 우연히 그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 일행과 맞닥뜨려서  시비가 붙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는 흘러 흘러 자신이 태어난 곳인 테베로 가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길을 막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괴물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수수께끼를 던져서 만일 그것을 못 풀면 그 사람을 잡아먹고, 누군가가 그 수수께끼를 풀면 스핑크스가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죽었다.
오이디푸스는 이 수수께끼를 풀어서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그 덕분에 테베의 왕이 되었고-전왕 라이오스는 국가의 재난을 이겨내기 위해 신탁을 받으러 가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테베의 시민들은 마침 스핑크스의 재난을 푼 오이디푸스를 새로운 국왕으로 앉혔다-전왕의 왕비인 이오카스테(즉 오이디푸스의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신탁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 사이에서 2남 2녀(에테오클레스, 폴뤼네이케스, 안티고네, 이스메네)가 탄생했으니, 이들은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의 아들이자 동생, 그리고 딸이자 누이동생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테베에는 새로운 재앙이 닥쳤다. 여자들은 아이를 유산하고 곡물은 자라지 않고 역병이 돌아서 시민들이 다 죽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재앙을 이겨내기위해 오이디푸스는 다시 신탁을 받아보았다. 그 신탁의 내용은 이 나라에 부정한 자, 즉 전왕을 죽인 살인자가 있기 때문에 재앙이 일어난 것이므로 그 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지배자로서 오이디푸스는 그놈을 기어이 잡아서 국가를 평안히 하겠다고 선언한다.
소포클레스의 극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오이디푸스는 만백성을 모아놓고 그 죄 많은 자를 잡아서 처형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이 극은 오이디푸스가 자기 자신을 찾아내 가는 이야기가 된다.
조금씩 조금씩 여러 정보들이 들어오고 그때마다 오이디푸스는 약간씩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이 선왕을 살해한 자이며 더구나 그 선왕이 자신의 아버지이고 현재 한 침대를 쓰는 여인이 자기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이 세상을 방황하게 된다.

3. 스핑크스의 두 번째 수수께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 가운데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그 수수께끼의 내용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 때에는 두 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인가? 답은 물론 '인간'이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놓고 그 많은 사람들이 풀지 못해서 괴물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한마디로 '목숨 걸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가 과연 그렇게 어려운 난제였을까? 만일 당신이 처음 이 문제를 받았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수수께끼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토록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괴물에게 잡아먹힌 것치고는 너무 쉬운 문제가 아닌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수수께끼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다. 즉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해결하지 못하고 괴물 같은 인생 그 자체에 잡아먹힌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수수께끼는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지만 막상 용기를 가지고 풀려고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리고, 그러면 그 수수께끼는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어떤 판본에서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하나가 아니고 두 개로 되어 있다. 스핑크스의 두 번째 수수께끼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만일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할 때 자신있게 풀 수 있었을까?
그 수수께끼는 이러하다. 언니와 동생이 있다. 언니는 동생을 낳고 동생이 언니를 낳는다. 이 자매는 누구인가?
 답은 낮과 밤. 즉 '시간'이다. 우리가 정말로 풀어야할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시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막무가내의 운명에 휩쓸려 들어가서 고통받으며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렇다.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을 벗어나 있는 존재는 신 밖에 없다.

4. 만물은 슬프다, 시간이 흐르는 곳에....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고, 운명의 신이 정해 놓은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그토록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외친다.
"신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하시려 하셨나이까?"
오이디푸스는 그의 처음에 '대왕'으로 나와서 만백성을 모아놓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극의 끝에서는 자기 자신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눈을 뽑아 장님이 된 채 온 세상을 방랑하는 추방자가 된다. 최상의 자리에서 최하의 위치로 급전락한 것이다. 수수께끼를 풀어 영광을 차지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이 곧 그의 파멸을 초래하는 새로운 수수께끼가 되어 그를 덮친다.
이 운명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뿐, 눈 뜬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운명의 길을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눈을 뽑아 장님이 되었다. 이 '암흑'을 가져다 준 것은 '광명'의 신 아폴론이다. 우리 인생은 이처럼 아이러니의 연속인가?
우리의 삶이 이러할진대 인간이 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길 밖에 없다. 그리스인에게 가장 중요한 말의 하나인 운명(Moira)의원래 뜻은 자기 '몫'이다. 너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하고 그대로 살아가라. 그 이상의 몫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신의 뜻과 운명의 힘, 섭리에 어긋나는 길을 가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죄의 하나인 오만(hybris)을 범하는 것이다. 가장 슬기로운 일은 조화와 중용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강물에 떠내려가는 풀잎처럼 하염없이 휘몰리기만 하는 존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때로 그 엄청난 힘 앞에 과감히 맞서서 장렬히 부서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때로는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고 또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소포클레스의 이 비극 작품을 보면서 도대체 오이디푸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그토록 처참한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는 성격이 급하고 그 결과 함부로 칼을 휘둘러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 또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생각하기도 힘든 죄악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그의 잘못인가? 신이 원래 그렇게 정해 놓았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지 오이디푸스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오이디푸스는 유덕하고 고귀한 인간의 풍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올바르고 자비로운 왕이며 훌륭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진실을 갈구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진실에 대한 용기가 오히려 그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따름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책임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 혹은 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비록 신이 우리에게 그런 운명을 예정해 놓았더라도 결국 나의 삶을 산 것은 나이므로 책임은 내가 질 수 밖에 없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후 코러스(시민들)와 나눈 대화는 오이디푸스의 도덕성을 말해주는 절창(絶唱)이다.

코러스:      오, 대왕이시여!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스스로 빛을 앗아갈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어떤 사악한 신이 이렇게 했습니까?
오이디푸스: 아폴로 신이오, 그것은 아폴로 신이었소. 내게 이 고통 이 괴로움을 준 것은 신이었소. 그러나 내눈을 친 것은 나의 손이었소.

비록 우리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장님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더듬어 나갈 수 밖에 없다. 나의 삶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오이디푸스의 그 장렬한 쓰러짐을 보면서 연민과 동시에 그 어떤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이 한없이 무력한 존재이면서도 내가 나 자신을 알고 나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출처: (저작권법에 걸린다하면 얼른 내리는 수 밖에 : ) )
# 31.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주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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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10. 6. 29. 22:20

#21. 행복한 우연-히노하라 시게아키(6.29)
행복한우연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 직장처세술
지은이 히노하라 시게아키 (영림카디널,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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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김선주(6.29)
이별에도예의가필요하다김선주세상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학일반 > 사회/문화에세이
지은이 김선주 (한겨레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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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6월까지 책을 20권정도 읽으면, 올해는 50권정도는-못해도 40권?-읽지 않을까라는 한 줄기 희망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게다가 빠삐용 이후에 잡은 책(제목은 들어봤나 <상식파괴자>라고)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자기 계발서란에 이름을 올렸지만 신경정신 과학서가 더 맞는 거 같은데, 뭐, 어디다 넣어도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이런 쪽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떡 버티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역시, 학문의 나라;; ) 집중이 되지 않아서 6개월20권으로 중간 정산을 하겠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비가 오더라. 나는 서점 앞에 서 있었지. 집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비가 오길래 그만 -_-;

그리고 저녁밥도 안 먹고 저 두권을 후다닥 봤으니 지금 배가 너무 고프다. (이 글을 쓰고 나면 금식 뒤에 찾아오는 폭식의 유령이 내 입에 라면을 넣고 있겠지 -_-; 아, 예지력이 생겼는지 왜 이리 눈에 선하냐; )

2가 <책 읽고 독후감을 포스팅하면 지겹지>라고 조언했으나, 읽은 책을 정리 하겠다는 순도 100% 자기만족의 심정으로 짧게 이야기하자면,

행복한 우연은, 직장 처세술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93세의 노교수이자 내과의사 분이 동일한 제목으로 도쿄공대에서 특강을 준비하면서 강연록 겸사겸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 같은 것이다. 하려는 말은 간단, "행복한 인생이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려있다는 것".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셨고 93세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의 삶에 자세에 대한 지침같은 것이랄까. 200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과 쉽게 쓴 글, 그리고 어디까지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금새 읽을 수 있음. 인생이 서러운날 읽으면 마음의 온도도 0.5쯤은 높일 수 있을 테고, 아무튼 그런 류의 책.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한겨레 칼럼리스트이자 우리나라 초기 여기자중에 한 분이신 김선주씨의 칼럼 모음집. 투명하고 날카로운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성과 뜨끈뜨끈한 심장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 정치적인 의견이 없지는 않지만 왠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또래의 여자들에게는 <한 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은 책이다. (왜 여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없는 듯하지만 기자를 준비하며 글쓰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은 한권 사다놓고 이 절제력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기자다운 글쓰기를 보여주신다. (여기서 기자는 기자같지 않은 기자들을 뺀 기자다 -_-; )

이제 배고프니까, 라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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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10. 6. 24. 08:53

#19.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쉴즈 (06.24)

우리는언젠가죽는다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데이비드 실즈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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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thing about life is that one day you'll be dead, David Shields

나랑 유머 코드가 맞는 건지 정말 오랜만에 책 읽다가 빵빵 터져서 미친듯이 웃어댔다. 유쾌한 책. 내가 식탁 맡에 머리 박고 낄낄 대면서 보고 있으니 아버지가 신기한듯이 쳐다보신다. (남성적인 코드가 강해서 여자들이 좋아할지는 정말 모르겠다;; 이 책에는 <감수성>이라는 파트는 없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면서 읽고 나면 작가의 말대로 삶의 단순함과 비극성이 느껴지는 종류랄까?) 

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와 죽음이라는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서, 처음에는 각 시기별의 생물학적 특성들을 이야기하고(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에 관심이 없으면 이 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 그 다음은 그 나이에 관련된 격언이나 유명인사의 말들이 쏟아진다음,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정말 인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자세였다. 기존의 지혜를 의심해 보라는 것. 스스로 본 시각을 고집하라는 것, 언어를 운동장처럼 생각하라는 것, 운동장을 천국처럼 생각하라는 것, 아버지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고, 내가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다른 누구의 거죽이 아니라 내 거죽에 담겨 있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다.(p321-이 책에서 유일하게 진지하게 교훈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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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10. 6. 7. 23:57

#13. 바다여, 바다여- 아이리스 머독 (06.07)-전2권
바다여 바다여. 1 상세보기


<바다여, 바다여>는 너무 재미있는 책인데, 이유는 알 수 없게 펴기만 하면 나를 잠에 빠뜨리고는 했다. (분명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유를 재고해 보자면, 아마도 <세계문학전집>리스트에 들어가는 책 모두가 가지고 있는 조금 옛날 말투? (그런데 도대체 뭐가 조금 옛날 말투인지는 잘 모르겠다)

줄거리는 찰스는 한 때는 꽤 잘나가는 연극배우였고, 훗날 연출가로서 더 큰 명성을 가지게 된 사람인데, 갑자기 은퇴하면서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늙어죽기로 결심한다. 그는 평생 난봉꾼으로 살아왔는데, 그게 자신을 버린 첫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녀를 구출해서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스토킹을 시작한다.

아무튼 이 남자, 찰스의 행동은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 스토킹인데,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는 책을 다 읽으신 후에도 그 생각을 못하시다가, 내가 <완전 스토커야, 싸이코 싸이코>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렇구나! 그게 스토커구나!> 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신생어를 아는 것과 적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것이다.

아무튼 저 줄거리 요약을 보며 누군가 이 책을 뽑아들었다가 또 한바탕 나는, 재미없는 책을 추천하는 여자가 될까봐 덧붙이자면, 아이리스 머독이라는 작가의 삶의 궤적을 배경으로 하면 확실히 이해되겠지만, 책 내내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하고, 그 대답들에 대한 철학적 논쟁들이 이어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어느정도의 환상적인 속성,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두 사람이 같이 하면서 만들어지는 어느정도의 현실적인 속성-떄로 상대를 증오하고, 멸시하고, 파괴하려 드는 것,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그리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기적인 사랑과 이타적인 사랑,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 등등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명성의 이유는 끝맺음에 있다고 생각하는데-많은 책들이 시작은 화려하지만 끝은 시시하게 끝내버리니까-이 책은, 결국 찰스가 자신의 미친짓을 깨닫고 어떤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에 대하여도 깨닫지만, 그렇지만 결국 찰스 자체는 변하지 않고(사람은 변하지 않아!) 계속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게 된다.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랄까, 계속 자기 방식대로.

나는 내가 일종의 미친 상태에 가까웠지만 아직 미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강박관념의 한 종류이다. 강박관념은 마음이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굴러가지 못하게 마비시킨다. 자연스럽고 열려 있고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 넘치는, 존재의 어떤 상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의가 바로 합리성이다. 나는 내가 전적으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고민스러운 생각들을 계속할 수 밖에 없으며, 환상과 의지라는 동일한 쳇바퀴 안에서 계속해서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정신이 말짱했다. 그러나 나는 이 기계적인 동작을 멈출 만큼 제정신인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다.
<몇 페이지인지 안 적어놨다--;>

우리의 결정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파멸시킨다 p377

앞에서 내가 얼마나 이기주의자로 보였을까? 그러나 내가 그렇게 특이한가? 우리는 이성보다 더 훌륭하고 비밀스럽고생명력이 넘치는 분주한 내적 본질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자기 만족이라는 빛에 의해 살아가야한다. p397

물론 이 수다스런 일기는 외관에 불과하다. 질투, 양심의 가책, 공포,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도덕적 실패등 내부의 파괴를 숨기는, 매일 미소짓는 얼굴과 같은 문학의 등가물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면이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약간의 용기도 생산할 수 있다 p400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무엇인가가 끝났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녀에 대한 나의 새로운 사랑, 나의 두 번째 사랑, 나의 두 번째 '행운기'는 내가 착각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가련히 여기고, 망가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내가 아낄 수 있고 매달리거나 잡아 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겼으며, 실제로 완전히 잃었었다. 만일 내가 그녀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해도 그녀가 빛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정점에서는 매우 숭고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 빛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빛은 사라졌으며, 기껏해야 늪에서 가물거리는 불빛이고, 나의 위대한 '등불'은 일종의 망상이 되었다. 그녀는 가 버렸고,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유령 헬레네를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On n'aime qu'une fois, la premiere. 그 어리석은 프랑스 농담 때문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가!

무엇이 변화를 가져왔을까? 아주 조용히, 그리고 자동적으로 모든 사물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무자비한 움직임인가? 타이터스의 죽음이 하틀리를 '빼앗아 갔고' 그녀 마음속에 살아남은 그가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고 기록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녀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점차 부식시키는 악마적인 불결함이, 그녀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녀로부터 나아서 그녀를 위하여 또한 나를 위하여 우리를 영원히 헤어지게 했다.이제 나는 그 불결함 때문에 그녀를 영원히 추하고, 단정치 못하고, 곰팡내가 나고, 더럽고, 늙은 것처럼 여긴다. 이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옳지 못한가! 그녀의 잘못도 아닌데, 아무리 따져봐도 잘못은 나한테 있다. 내가 내 악마들을, 질투의 바다 뱀들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어떻든지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나의 용감한 믿음은 힘을 잃고 사라졌다. 모든 것은 하찮은 것으로, 이기적인 무관심으로 퇴색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듯이 나도 그녀를 조용히 멸시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진심으로 숭배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도 가끔 우리는 남몰래 멸시한다. 토비와 내가 제임스를 멸시하듯이 놀랄 만큼 필요한, 우리 자아의 건강한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남을 멸시한다. p.4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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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10. 4. 19. 18:14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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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절대자면, 시험이 끝나고 가장 먼저 읽어야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책이 있다면 제임스딘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소설인 <톰 리플리> (제임스딘의 영화 자체가 톰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이 원작 소설 <톰 리플리>의 작가가 페트리샤 하이스미스.
민음사에서 이 여성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3권(? 어쩌면 더 많이) 냈는데, 그 중에 한 권인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책을 봤고 (저번주? 저저번주? 쯤이라고, 내 양심에 거슬리지 않도록 날짜는 잊어버렸다) 그래서 이 사람 책을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별명이 <20세기의 애드가 앨런 포>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조금 음울하고 괴기스런 분위기가 글 전반에 자리잡고 있지만-거의 전부다가 추리소설이다- 읽고 나면 아주 심하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못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이니까 그게 아주 비극적이거나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
제목이 나를 부른 책과 같은 제목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글은 친목모임안에서 한명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다들 아주 소박하게 "그가 촌스럽기 때문에" 혹은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유머러스하지 않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스스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과 어울리기 싫다고 직접 말하는 것은 너무 특별한 이유가 없고, 자신이 경박해보이고, 등등의 이유들로, 그저 그 사람을 조금 무시하거나, 조금 괴롭히는 방식으로 그 기분을 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자살한다.
사실은 <우리가 그를 죽였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다들 모여서 <안타까운 죽음>이라던지 <비극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모임에서 봐요>로 헤어지고.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검은집>과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이름이 불렀으니까). 그럼 이제 다음 리뷰는 리플리가 되려나? : )

Posted by aeons
서재2010. 4. 5. 23:46

예전에 단순하게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참고--> 2010/03/15 - [서재] - 1월 2월 그리고 3월의 반)
 
the secret book이라는 원제 밖에 생각이 안났지만, 한국 번역서의 제목은 "비밀 엽서"였다. 씨리즈로 총 4권이 나와있다.

비밀엽서: 세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비밀고백 프로젝트 상세보기



아무에게도 말 못한 당신의 비밀을 적어서 자신에게 엽서로 보내달라고, 프랭크 워렌이란 사람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 기획이 엄청 먹혔기(?) 때문에 몇 번의 전시회도 열었다. 결국 사람의 비밀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 나의 소감(?)


"There are two kinds of secrets:
               those we keep from others and we hide from ourselves."  
당신의 비밀은 어느 쪽?  비밀이니까 말해줄 수 없겠지?    

가장 많은 타입의 비밀은,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 만큼 많은 타입의 비밀은, 사실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역시 사람 마음은 갈대? )
"I don't wear my ring,
because I don't love her. Not because I don't like rings.."
(아저씨 제발;; 나 아직 결혼 안했는데 꿈과 희망을 좀 주지 않을래 -_-; )

또 다른 유형은, 죽고 싶어요.


"The nights I sleep the best, I dream about being shot"




                                   "Feel blank inside me"

당신을 속이고 있어요, 계속 속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다시 사랑 타령으로 돌아와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만큼 많은 것은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답니다.

'                   I met you one night and I fell in love with you.
                I was too afraid to tell you and you never found out"


이런 남자들에게 하는 여자들의 말은 "어쩌라고"

역시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이 좋다면,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읽을 수 있는 말들.




가장 충격적이었던 엽서는 사실, 사진으로 찍어놓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대강 이런식
"그 사람이 감옥에 있어요 2년 됐죠.
앞으로 9년 남았어요.
내가 한 일 때문에"

가장 내용상 좋았던 것은 이것;


"Dear Frank,
I have made six postcards, all with secrets that I was afraid to tell the one person I tell everything to, my boyfriend. This morning I planned to mail them, but instead
I left them the pillow next to his head while he was sleeping.
Ten minutes ago he arrived at my office and asked me to marry him.
I said
Yes"

나의 비밀은...





Posted by aeons
서재2009. 11. 23. 07:01
"내 자신의 역사 기록 가운데,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인 '19세 미만 관람불가' 부분을 읽는 기분이었다. 부분적인 거짓들과 이해할 수 없는 반쪽 진실의 단편들로 구성된, 절반은 베일에 가려진 인생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나는 매일 같이 보아온 그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 숨겨진 애매모호함과 비밀을 처음으로 밝혀내는데 나 또한 한몫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마터면 그 사진 앞에 무릎 꿇을 뻔 했다. 그 흑백사진 속에서는 어머니가 수녀원의 일원이었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나는 그저 입을 다무는 것 만이 역사상의 최고의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근본적인 생각의 복잡한 삼각법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었다."
- p155


사우스 브로드-팻콘로이(11.20)
사우스 브로드. 1 상세보기

전 2권.  원제는 South of Broad 인데 of는 왜 홀라당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 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음. 500~600페이지에 가까운 거대한 두께의 책이 2권이나 있는 것을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한 느떄 심정을 전혀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나의 올해의 소설>안에 들어갈 것 같다.

"몇몇은 그가 그 유명한 풋사랑에서 헤어나기만 한다면 진지하게 교제해보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그는 아직도 그 어떤 남자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여자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조소했다. 하지만 그는 찰스턴 항구 조류에 갇힌 튜브에서 옷을 입은 채로 떠다니던 그 열일곱살 때와 정확히 똑같은 감정이 일지 않는 한 그 어떤 여자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고 있었다."
-p 175 (이 소설에서 가장 달콤한 레오의 아버자의 연애이야기)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유년시절의 추억들과 운명의 소용돌이,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머무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생각하는 많은 주제들이 책에 묻어 있어서(선택/운명/영원을 꿈꾸지만 실패하는 것/인간의 능력 밖의 것들/이야기의 가치 등등) 더 재미있게 보았다. <운명의 비정함>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책장을 덮은 나로서는 엄청 행복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한데 묶었던 힘은 우리를 갈래갈래 찢어놓기도 하고, 우정에 한희를 가져다 주는 미묘함과 무분별 그리고 한계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나는 친구들 중 일부가 다른 사람들과 더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음을 알아챘고 그것은 대부분 맞았다. 이듬해 5월 우리는 멋있고 자기 실현적이며 놀랄만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졸업식장을 떠났다. 우리는 이제 막 들어가려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바꾸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괜찮게 해냈다. 우정은 우리를 한동안 지탱했지만, 그 우정도 번쩍이는 광채를 다소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인생의 중반기에 서로를 소리쳐 부르며 또 다시 찾게 되는데, 그렇게 된 계기는 노크소리 같이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p251



무엇보다 책을 읽어가면 정말 그 장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묘사력에 감탄했다. (내가 가장 종하하는 부분은 주인공 레오가 신문 배달을 하면서 동네를 도는 것에 대한 묘사다. 훗날 동네 사람들은 그날의 레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설명하는 부분) 글을 정말 "아름답게" 쓰는 능력을 지닌 작가인듯. 그리고 미국의 남부에 대한 애착과 남부 유머의 매력에 쏙 빠질 수 있는 책.

Posted by aeons
서재2009. 9. 16. 01:46

1. 그와 만난 후, 나의 몸은 정직하게 이 스트레스를 받아들여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정말 글자와 글자를 눈으로 확인한후 그것이 단어임을 인식하고, 다시 단어와 단어로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것을 30초마다 한번씩 확인해가면서 바우돌리노를 읽었다. 하필이면 왜 그 상황에서 바우돌리노였어?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 상황에서는 무슨 책이든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을테니 결국 뭐였든 상관없었을꺼야.라고 대답했으리. 아무튼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인내심을 가지고 읽은 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바우돌리노.

2. 움베르트 에코는 실은 소설은 단 4권을 썼는데-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전날의 섬을 안 읽은 나로서는 아직까지 1등은 푸코의 진자. 미안하게도 바우돌리노에 대한 평가는 절대로 객관적이 될 수가 없겠지만, 일단은 꼴지.(그렇지만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친구는 자기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깔깔 거리면서 책장을 넘겼다고 증언했다)

3. 일단 바우돌리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실제 중세 유럽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이나, 전해지던 이야기들. 그 모든 설화와 신화들이 뒤엉켜 탄생된 완전한 거짓 인간, 그러나 모두가 아끼던 인간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우돌리노가 실존 인물인지, 바우돌리노의 인생이 진짜인지를 소설 자체에서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소설의 결론은 그것이다.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가 역사에 남는다고 좋을 것이 하나도 없소, 그러니 엄청난 거짓말쟁이가 등장하여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를 하게 놔 두시오. (당신이 믿든 말든 당신의 자유요!)

그렇지만 작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우돌리노라는 인간에게 긍정적이며 바우돌리노의 인생을 응원한다. (그래서 결국 바우돌리노는 히파티아를 찾아, 요한 사제 왕국을 찾아 다시 떠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움베르트 에코의 화신이기도 하는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하는 "거짓말=이야기"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에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잊기 위해서 말입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이 결국 이 세계마저 바꿔 놓게 된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p 169)

4. 바우돌리노는 3번의 사랑을 겪는다. 첫째는 그의 양어머니이기도 한 황후 베아트릭스, 두번째는 고향 마을의 어린 처녀였던 콜란드리나, 그리고 마지막은 반인반양의 히파티아, 베이타릭스가 그가 범접할 수 없었고 그저 꿈꿨던 이상의 사랑이라면, 콜란드리나는 친밀감과 편안함의 사랑이고, 히파티아는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이다. 히파티아가 바우돌리노와 동등한 입장에서 논쟁하며 서로가 상보적인 역할이 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희대의 거짓말쟁이인 바우돌리노의 상상력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인물-히파티아를 상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이라면 콜란드리나는 편안한 가족같은 사랑이다. 콜란드리나는 바우돌리노를 따르고 존경하며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운명앞에서 좌절된다. 바우돌리노의 첫사랑이자 황후의 경우, 그는 현실의 베아트릭스가 아닌 자신의 상상속의 베아트릭스를 사랑한다.(실제로 자신이 1인 2역을 하며 편지를 주고 받기도 한다) 그래서 베아트릭스에 대한 사랑이 깨어지고 더 이상 그녀에 대한 상상이 무의미해지며, 따라서 그의 다른 상상을 쫓아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요한사제의 왕국을 찾는 모험이다. 바우돌리노는 이것을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내게는 가장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뭔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 나는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는 못했나보다.

"이제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치유된 상처와 같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내게 기분 좋은 추억을 불러 일으켰지만 떨림은 없었습니다. 나는 고통없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고 아픔을 맛보지 않고도 그녀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내가 완전히 어른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청년기의 모든 열정이 잠재워졌습니다. 그 사실이 유감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조금 우울했을 뿐입니다. 나는 서슴지않고 우는 비둘기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을 나누는 계절은 끝이 난 것이지요. 이제 몸을 움직여 바다 너머로 가야했습니다."

5. 결국 바우돌리노의 한 평생은 그의 모험의 끝이자 프리드리히를 살해한 범인을 밝히는, 소설의 첫부분-역사학자 니케타스와의 만남-으로 돌아오는데, 프리드리히의 죽음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가능성을 남김으로써 다시 한 번 <바우돌리노>라는 소설 자체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엔딩은 결국 바우돌리노는 꿈과 상상, 모험과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움베르트 에코의 박학다식과 특유의 유머감각들이 부분부분 빛을 바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다시 한 번 등장하는 기독교적 논쟁들도 프리드리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라는 흥미진지한 소재로 덮어씌워 이끌고 가니, 이 정도의 이야기를 이 정도의 재미로, 일반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에코 밖에 없다고 다시 한 번 느낀다.

바우돌리노 - 움베르트 에코(09. 15)
바우돌리노(상) 상세보기


6. 그렇게 바우돌리노는 요한 사제의 왕국을 찾아 떠났는데, 나는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있다. 책을 다 읽었지만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책의 효과는 미래로 나를 밀어주지 못하고, 나는 묵직한 무게의 고집으로 제자리에 있는다고 우기는데, 그래봤자 달라질 것이 하나 없는 현실임을 알아서 조금 슬프다. 아, 머리를 흔들어 잡념들을 털어버려야 할텐데.

덧, 아이다움에 대한 움베르트 에코의 통찰(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며 깔깔 웃어줬음)

>>누비아인들은 어린아이들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하고 싶어한다(5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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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