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2010. 3. 6. 00:23

1. 일반적인 미시 경제학에서 아주 기초적인 가정 중에 하나는 <합리적인 소비자>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인간이 결코 합리적일 수만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2. 미시경제학에서 합리적인 소비자의 선호는 효용함수로 대체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 소비자 선호이론이다. 소비자 선호이론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기본적인 가정(=공리)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1> 완비성(Completeness)
      -합리적인 선호자라면 둘 이상의 상품 묶음이 존재할 때, 자신이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지, 혹은 선호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판단력의 문제다)
 <2> 이행성(Transitivity)
      -상품 묶음 A,B에 대해 A를 B보다 덜 좋아하지 않는(더 좋아하거나 똑같이 좋아하는: A≥B) 소비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소비자가 또 다른 상품 묶음 C에 대하여 B를 C보다 덜 좋아하지 않는(B≥C)다면 이 것은 즉 A를 C보다 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C)
      -이행성이란 선호의 일관성(Consistency)가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소비자가, A>B 이고 B>C인데, C>A! 라고 대답한다면 이 소비자를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
 <3> 연속성(Continuity)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두 상품 묶음간에 아주 작은 차이만 있다면 이들에 대한 선호도도 아주 작은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공대적으로 말하면 연속함수인거다.

3. 전날의 과음후 엄마에게 달달 볶이던 아버지에게 내가 물었다
 -아빠, 엄마가 좋아? 내가 좋아?
 -당연히! 니 엄마지 :)
 -그럼.... 엄마가 좋아? 술이 좋아?
 -응, 술!
  ......
  근데.... 술보단 니가 좋은데.

4. 이행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합리적인 소비자에서 제외됐다.

5. 그의 딸인 나는 더 문제가 있다. 난 완비성부터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 자판기 앞에서 10분간 망설이다 결국 아무것도 못 먹는게 내 인생이다. 이걸 중국아이들이 간단하게 4글자로 요약했는데, 바로 우유부단(優柔不斷, lack of decision)

6. 그래서 결국 살림은 "합리적인 소비자"인 엄마가 해야하는 것인가보다. 잘 살펴보면 어마마마는 저 3가지 공리를 모두 훌륭히 충족시킨다. 그것도 모질라 강단조성(strong monotonicity)마저 만족시킨다.

7. 강단조성은 뭔가요? 강탄력성은 효용이론에서 합리적인 소비자의 요건을 규정한 공리는 아니다. 단지 경제학에서 분석의 편의를 위해 보충적 공리로서 도입한 개념으로, 상품 묶음 A와 B가 그 종류는 같고 수량에서 차이가 날 때 합리적인 소비자는 양이 더 많은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the better!)
Posted by aeons
서재2010. 3. 5. 23:55

1. 영시랑 담 쌓아올린 건 단순히 내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였을까? 요즘 아주 영어 시의 아름다움에 빠져 흥청망청 공부를 안하고 있다. (여기서 그대가 "내가 공부 하기 싫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는 행간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영어 시의 아름다움에" 빠져있지 않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국이든 미국이든 그 밖의 다른 나라든 시인에 대해서는 별 반 아는 바가 없는데, 그래도 알고 있는 미국작가가 있다면 바이런, T.S.엘리엇. 프로스트 그리고 워즈워스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도 나름 좋아하는 시인 "초원의 빛"이 크리미널 마인드에 인용되어서 무지 반가웠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오래된 에피이지만; ) 그리고 오늘 문득, 점심을 먹고, 공부는 하기 싫은 와중에 초원의 빛을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찾아보고 나니 초원의 빛은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from Recollection of Early Childhood"라는 시의 제 10연 중 일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초원의 빛이라는 시는 없다는 이야기)

2. 닥터 리드가 읽어주는 것을 원하시면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cakelub&prgid=31699953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3 에피 19)
시를 읽어주는 부분은 42분 20초 부터.

3.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 of Early Childhood
                                                                            
                                                                      William Wordsworth
<10>
Then sing, ye Birds, sing, sing a joyous song!
And let the young Lambs bound
As to the tabor's sound!
We in thought will join your throng,
Ye that pipe and ye that play,
Ye that through your hearts today
Feel the gladness of the May!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lass, of glory in the flowers;.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이제 노래하라, 새들이여, 노래하라 기쁨의노래를 불러라.

그리고 어린 양들을 작은 북소리에 맞추어 뛰놀게 하라!
우리는 상상속에서 그대의 무리들과 함께 하리니,
그대 피리를 부는 자들이여
그리고 뛰노는 자들이여
그대 오늘 진심으로 5월의 즐거움을 느끼는 자들이여!
한 때 그렇게 빛나던 그 광채가 지금 나의 눈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하여도,
그 무엇도 초원의 빛, 꽃의 영광의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 없다 하여도.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아니, 찾을 것이다.
뒤에 남겨진 것들 속에서 힘을.
분명 영원히 계속될 원초적 공감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위안의 상념들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신앙속에서
현명한 마음을 갖게 하는 세월 속에서.

참고: 1. 친히 번역하셨으니 정확성은 저리가라 --;
        2. 파란색 부분은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인용한 부분
Posted by aeons
노트2010. 3. 2. 23:15

1.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규정한 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도덕적 수준도 높은 인물을 가리킨다. 이와 비교하여 현대극의 주인공은 tragic hero 보다 protagonis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Hero라는 단어가 사용된 이유는 고전 비극의 주인공이 운명이나 어떤 절대적인 힘에 대항하여 비록 실패하지만 영웅적인 성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주인공은 "비극적 결함(hamartia 또는 tragic flaw)"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극적 결함이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을 뜻한다. 공통적인 비극적 결함이 <자만심>이라고 설명했다.
즉, 고전 비극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악한 인물이 아니라 판단착오나 자만심과 같이 작은 실수로 인해 커다란 비극을 겪는 인물이다. 따라서 관객에게 연민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2. 하루종일 내 인생의 비극적인 사건들에 생각했다. 그리고 그 원인인 나의 성격적 결함도 생각했다. (ㅋㅋㅋ) 내 인생이 비극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3. 바로 이, 오늘 하루의 성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않나? 내 인생? (ㅋㅋㅋ) 이것이 바로 자만심이다 -_-;
Posted by aeons
서재2009. 12. 27. 14:24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상세보기

우리 나라 번역서는 이것
불황의 경제학 상세보기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에서 시작해서 남미-일본-아시아로 이어지는 국가나 지역 수준의 불황을 검토하고 현재(2008) 미국에서 시작될 것처럼 보이는 불황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분석한 책.

일단 그들의 불황이 왜 벌어진 것인지, (사실은 1997년 우리나라 IMF 위기가 왜 벌어진것인지도 -_-; ) 몰랐던 나로서는 내용도 재미있었고, 명확하고 간단하게 설명해 내는 능력이 교수로서의 재능중에 하나라면 당연 박수를 쳐줘야 할 만큼 폴 크루그먼의 문장력도 좋다.

원서로 읽기에 단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경제학서를 처음 접한다면 경제학 용어들을 익혀야하는 필요성이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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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09. 12. 17. 20:29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상세보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아주 간단하게 정리 할 수 있다.
아 역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작들이랑은 궁합이 맞지 않나보다.
라고,

그러나 첫페이지부터 15페이지까지는 너무 좋아서 한 5번쯤 다시 봤다.
역시. 그의 문장력은 발군.
Posted by aeons
서재2009. 11. 23. 07:01
"내 자신의 역사 기록 가운데,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인 '19세 미만 관람불가' 부분을 읽는 기분이었다. 부분적인 거짓들과 이해할 수 없는 반쪽 진실의 단편들로 구성된, 절반은 베일에 가려진 인생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나는 매일 같이 보아온 그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 숨겨진 애매모호함과 비밀을 처음으로 밝혀내는데 나 또한 한몫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마터면 그 사진 앞에 무릎 꿇을 뻔 했다. 그 흑백사진 속에서는 어머니가 수녀원의 일원이었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나는 그저 입을 다무는 것 만이 역사상의 최고의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근본적인 생각의 복잡한 삼각법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었다."
- p155


사우스 브로드-팻콘로이(11.20)
사우스 브로드. 1 상세보기

전 2권.  원제는 South of Broad 인데 of는 왜 홀라당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 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음. 500~600페이지에 가까운 거대한 두께의 책이 2권이나 있는 것을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한 느떄 심정을 전혀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나의 올해의 소설>안에 들어갈 것 같다.

"몇몇은 그가 그 유명한 풋사랑에서 헤어나기만 한다면 진지하게 교제해보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그는 아직도 그 어떤 남자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여자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조소했다. 하지만 그는 찰스턴 항구 조류에 갇힌 튜브에서 옷을 입은 채로 떠다니던 그 열일곱살 때와 정확히 똑같은 감정이 일지 않는 한 그 어떤 여자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고 있었다."
-p 175 (이 소설에서 가장 달콤한 레오의 아버자의 연애이야기)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유년시절의 추억들과 운명의 소용돌이,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머무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생각하는 많은 주제들이 책에 묻어 있어서(선택/운명/영원을 꿈꾸지만 실패하는 것/인간의 능력 밖의 것들/이야기의 가치 등등) 더 재미있게 보았다. <운명의 비정함>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책장을 덮은 나로서는 엄청 행복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한데 묶었던 힘은 우리를 갈래갈래 찢어놓기도 하고, 우정에 한희를 가져다 주는 미묘함과 무분별 그리고 한계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나는 친구들 중 일부가 다른 사람들과 더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음을 알아챘고 그것은 대부분 맞았다. 이듬해 5월 우리는 멋있고 자기 실현적이며 놀랄만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졸업식장을 떠났다. 우리는 이제 막 들어가려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바꾸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괜찮게 해냈다. 우정은 우리를 한동안 지탱했지만, 그 우정도 번쩍이는 광채를 다소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인생의 중반기에 서로를 소리쳐 부르며 또 다시 찾게 되는데, 그렇게 된 계기는 노크소리 같이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p251



무엇보다 책을 읽어가면 정말 그 장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묘사력에 감탄했다. (내가 가장 종하하는 부분은 주인공 레오가 신문 배달을 하면서 동네를 도는 것에 대한 묘사다. 훗날 동네 사람들은 그날의 레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설명하는 부분) 글을 정말 "아름답게" 쓰는 능력을 지닌 작가인듯. 그리고 미국의 남부에 대한 애착과 남부 유머의 매력에 쏙 빠질 수 있는 책.

Posted by aeons
서재2009. 10. 16. 11:24

불안-알렝 드 보통(10.16)
불안 상세보기
어글리트루스(10.12)
어글리 트루스
감독 로버트 루케틱 (2009 / 미국)
출연 제라드 버틀러, 캐서린 헤이글, 셰릴 하인스, 브리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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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영화는 홍콩느와르 필름일 것이다. 그곳에는 정의도 선도 없고 그저 승자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난무하는 액션이나 마음이 찢어질듯한 비극적인 운명이 아니어도 추악한 진실은 여기저기 산재한다.
예를 들면 그렇다. 어글리 트루스에서 제라드 버틀러가 말하는 모든 연애의 법칙은 80%정도는 들어맞는다. 여자는 남자를 안달하게 만들어야 하고,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면 왠지 상대는 멈칫하는 것이 정석인데 적극적인 역할이 여자일 경우 정확도는 더더욱 올라간다. 남자는 그들도 인정하듯이 시각적인 것에 약해서, 결국 어떤 여자를 원하냐면, 예쁜 여자를 원한다는 것들 말이다. 억울하면 고치렴. 요즘은 과학 기술도 좋단다. 등등등. 영화는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은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사실 영화속에서 제라드 버틀러는 이제 앞길이 창창한 앵커고 캐서린 헤이글은 <절대로 못생기지 않은> 본판은 좋은데 꾸미지 않은 여자일 뿐이다. 그말인 즉슨, 능력있는 남자와 예쁜 여자의 조합이다.마치 수많은 연애의 법칙들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랑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모든 연애의 법칙이 맞아요! 라고 하고 있는 것과 같다랄까. 그래서 본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으나보다 <오랫동안 솔로인 여자들은 꼭 봐줘야할 거 같아>

본능적으로 사람은 사랑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조건없이 동그랗고 보송보송한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주어지는 맹목적인 사랑=부모의 사랑을 항상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부가가치까지 생산해야"만"하는 나이가 되면 누구도 맹목적으로 사랑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하단다. 이것이 알렝 드 보통이 말하는 <status anxiety>. 그래서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지위, 명예, 돈 같은걸 추구한다. 완전 경쟁의 물질 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손에 쥔 모든 것이 능력이고, 그리고 사랑과 관심을 받을 증거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왜 더 불안해 하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사랑하는지 "지위.명예.돈 때문에" 사랑하는 척 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불안의 늪에 빠진다.

사실 가끔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 들기는 한다. 쉽게들 여자는 나이 30을 찍으면 오르지 못할 내리막을 내려간다느니, 그 때부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느니 라고 말하지만-그 나이는 점점 뒤로 가서 이제 32로 변해간다-그냥 그것은 평균적인 한국여자에 비해 구리기 그지 없는 평균적 한국 남자들의 이데올로기 발언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적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가 19, 20살때의 그 가슴떨림이 없어지고 있는 것을 느껴서 아닐까.(아 불안하다.)

그렇지만 <너는 불안할 수 밖에 없어>라는 책 한권과 영화 한 편을 보고도 자세는 변할 생각이 없으니 난 정말 불안해야만 하나보다. 아무리 주변에서 <지금 이대로는 안돼>라고 말하지만 나는 가장 완전하게 내 자신으로 있을 때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고 고집을 굽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편안 옷만 입지는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의 변명 삼으며.
Posted by aeons
앙케이트2009. 10. 10. 11:05

Q. 너의 <연애 바이블>이라고 말할 만한 영화는 뭐야?
A. Best 3. (순서는 순위와 관계없음. 응답자는 전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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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자기 사랑 영화가 너무 보고싶은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요즘 재미있는 영화가 뭐야>는 너무나 재미가 없으므로, 질문은, <너의 연애 바이블은 뭐야?>. 언제나 시작은 소소하지만, 대답들이 재미있으면 계속 묻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응답자 수 추정 불가. 그러나 집계는 가능. Best 3는 저거다. 사실 아슬아슬하게 순위권에 진입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봄날은 간다>. <러브 액츄얼리>.

2. 그런데 "연애의 바이블"이라는 건 대체 뭔가요? 라고 물으면, 나도 정의 불가다. 그러나 단 한 번에서 수십번에 이르기 까지 연애해본 사람이라면-심지어 안해본 사람들도-모두 가지고 있다. 이유없이 마음 설렌 영화. 나도 모르는 새 질질 짜고 있던 영화. 알수 없이 마음이 저려온 영화. 볼 때는 아무 생각없었는데 여운이 길게 남아 수년이 지난 뒤에도 생각나는 영화.

3. 나의 연애 바이블은 <Eternal Sunshine>. 제발 이 것만은 남겨 두세요라는 절절한 외침도. 곧 깨어질까 두렵고 차갑기 그지 없지만 별들이 쏟아지는 빙판 위에서의 두 사람도. 기억을 지워버려도 다시 또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어리석은 인간까지도.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고 생생하다. Eternal Sunshine on spotless mind!
<나의 바이블은, 봄날은 간다,연애의 목적. 이터널 선샤인.>이라고 복수 응답을 한 친구의 인상적인 발언은 이거였다. <그런데 말이지. 연애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건 동양에서는 첨밀밀. 서양에서는 노팅힐 같아.> 이 발언에 공감하지 않을자 누군인가.

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영화는 <페인티드 베일>. 사실 이 대답을 한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는데, 친구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가까운 그녀의 무덤덤한 음정의 추천 멘트가 나의 호기심을 당겼다-혹은 다른 모든 영화를 이미 봐서 였을수도 있다.
<음.. 바이블? 글쎄... 바이블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 영화 인상깊었어... 제목이 뭐더라... 왜, 아내가 바람펴서 두메산골에 들어가는...>
내가 <뭐?>라고 묻자, <그게 내용이야, 두메 산골에 들어가는거>
(이게 지금 연애 바이블을 소개하는 태도인가 -_-;)

그리고는 몇 일뒤 문자가 왔다 <제목생각났어페인티드베일>

5.
페인티드 베일
감독 존 커란 (2006 / 미국)
출연 나오미 왓츠, 에드워드 노튼, 리브 슈라이버, 다이아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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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두 배우, 에드워드 노튼과 나오미 왓츠가 주연.제작했다는 점, 원작이 섬머셋 모옴이라는 점이 거기에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벌여, 낼름 이번 추석 연휴에 구해봤다(10.02)

6. 영화의 구도는 사실 단순해서 <<나쁜남자 VS 좋은 남자>>라는 고전적인 주제. 나쁜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중심적이고, 그러나 감각적이고 즐겁고 자신감도 넘치는 듯 보이고, 좋은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를 배려하고, 그러나 재미없고 무뚝뚝하고 고집스럽다. 그리고 나쁜 남자에 빠져서 팔자를 원망하는 여자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말을 극중 나오미 왓츠가 연기하는 키티가 이렇게 대신해준다.

"남자의 좋은 점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에요"

(네가 배가 불렀구나 에드워드 노튼이 이렇게 쳐다봐주면 낼름 사랑에 빠져야지 -_-; )

7. 섬머셋 모옴이라는 대작가의 충고는 영화를 본 사람이, 혹은 책을 본 사람만이 들을 수 있을 텐데.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멘트-공감과 전율을 느꼈다-는 영화전체의 마지막 대사였다.
"No one important, darling".

(나도 저 대사를 멋지게 날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비록 그 자식이 멍멍이의 예쁜 아가의 나쁜 버전같은 사람이라고 해도-저렇게 쿨 할 수 있는 건 영화 말고 가능한 데가 있는 건가. 물론 나도 그 장면에서는 쿨했지. 그러나 마주치고 30분 뒤에 교보문고 잡지코너에서 잡지에 한 손을 얹고 한 손은 땅에 닿을 수 있는 쭈그린 자세로 앉아 친구에게 1시간 동안 Crazy 버전을 여실히 보이며, 분명히 쿨하고 싶었지만 멍청해보였을 것 같은 그 10초간의 어색한 인사후 헤어짐의 상황을 설명해댔다. 분명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교보에서 미친 여자를 봤다는 블로그 포스팅을 누가 했으리라-_-;. 수식어가 "미친"이 아니면 "불쌍한"인데 불쌍하기 보다는 미치고 싶다.)

8. 그러나 현실에 그런 남자는 없다. 그런 남자? 한결같이 사랑하고 끊임없이 용서할 줄 아는 남자. (여자도 없지 않나? 음... 클림트의 에밀리 플뢰게? 이라고 우기면 뭐 할 말 없다.) 그래서  페인티드 베일은 평범한 인간도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모습과 바람직한 충고를 담고 있으나 소수답변, 바이블의 위치는 클로저가 차지하는 것 아니겠는가.

9. 인간이 이 땅에서 두발로 걷기 시작한 뒤부터 생겼을 것 같은 남녀 문제의 고전적 주제인
<좋은 남자 VS 나쁜 남자> <사랑 받는 것VS 사랑하는 것>이라는 문제는 사실 모범 정답을 가지고 있다. 제인 오스틴부터 베트멘까지 한결 같이 같은 소리를 하니까.
하지만 현실에 모범 정답이 존재하지만 내 인생은 모범 정답이 없다는 것이 문제 아닐까. 완벽한 사람을 꿈꾸지만 완벽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고, 숭고한 사랑을 꿈꾸지만 내 사랑은 가끔 너무 유치하고 가끔은 너무 구질구질하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오늘도 모두들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10. 아 그러나, 한 번 그렇게 사랑 받아봤음 좋겠다는 것이 로망이구만

덧! 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 하나는 영상미. 아, 중국만의 아름다운 풍경이렸다.


덧2. 영미권 포스터. 우리 나라 버전 보다 조금 노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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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첫째 조건  (4) 2010.07.10
Posted by aeons
서재2009. 10. 6. 18:35

1. 철학+심리학+뇌과학.
   3박자를 갖췄으니 내가 좋아하지 않고, 혹은 읽어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던 책.

  나는 누구인가: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할 34가지 질문(10.01)
나는 누구인가 상세보기

2. 3장으로 나누어져서 총 34가지 질문을 하는데 내용은 독립적이나 앞 질문과 이어지며 뒷질문에게 바톤을 넘기는 형식이다. 철학적인 질문과 그에 대답한 대표적인 철학자의 논리, 그리고 과학적으로(심리학 실험에 의해 통설이 된 사실들이나 뇌과학 분야의 해설들을 인용한다) 그 질문에대해서 얼마만큼 밝혀졌는지가 이어진다.
등장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의 재미가 쏠쏠하고-언제나 느끼지만 후대에 이름을 길이 길이 남긴 이들 중에 살아있을 떄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철학자는;; 게다가 삐뚤어진 철학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삐뚤어진 이야기들은 얼마나 또 재미있는지)

3.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감정에 관한 것.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고 가정하며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비로소 인간답다고 취급하지만 사실상 감정은 제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려사항에서 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가 제어하거나 만들어낼 수 없지만 사실상 우리의 객관적 판단이나 논리는 모두 감정이 앞서서 결정해 놓은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라고. 아 이거 정말 맞는 이야기야! 라고 엄청 공감하면서 2번 읽었다는.

4. 재미있는 책이지만, 나로서는 관심분야 3종세트였기때문에 다른 이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다. 이런거 섣불리 추천하면 혼나던데. 쉬운 입문서라기 보다는 조금 더 깊게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더 좋은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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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9. 10. 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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