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의 수다2010. 3. 12. 00:20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1.  꽤나 오랜만에 탄천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의지박약에 타고난 체육인이 아니므로 적당히 5km.(첫날이잖아 -_-; 라고 생각하며)  기분은 상쾌하나 잠은 어떻게 잘지 고민인 지금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중가의 여행期)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했고, 분을 내 놓은 채 내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보내는 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2. 모든 애정은 집착을 동반한다. 독점욕 없는 애정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트로이 전쟁은 안 일어났을 거다. 수많은 젊은이도 죽지 않았을 꺼고, 우리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도 몰랐겠지)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무소유"를 읽었을 때는 내가 별반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그것은 사실 커서도 변함없는데- 아, 제길, 그런데 나의 문제는 사람 욕심이다. 스님, 사람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버리나요, 라고 묻고 싶은 오늘, 대답은 S가 대신해준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쟈 아픔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오는듯>
(우리의 대화는 80byte)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3. 하지만 사람은 소유할 수 없는 존재고, 남의 속은 열길 물속보다 깊어서 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고, 나이를 쳐먹었더니 다들 마음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차서 straightforward하게 표현도 안해준다. (이렇게 투덜거렸더니 L이 상담해줬다 <넌 왜케 학습 효과라는 걸 모르냐? 이제 돌려 말해도 다들 알아먹는 나이인거야>.)
그리고 가끔 내 것이 아닌 사람에게도 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물스물 멀어져 떠나가는 그대를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아프다.
사람에 대한 욕심은 소유하지 못해서 더 괴롭다. 소유할 수 없어서 무소유 할 수도 없으니까.

4. S의 조언에 따라 무소유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서재에서 찾으려하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얇디 얇은 범우사 문고판이라 어느 책 사이에 끼워져있으면 어쩌지라고,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집착하며, 도대체 아빠 마음대로 분류해 놓은 서재를 기웃거린다. 그러다 드디어 찾아냈을 때의 이 기쁨! 오! 찾았다! 스님, 소유는 기쁨을 주네요. 역시 저는 그저 범인인가봐요.

5. 그렇지만 이 모든 욕심을 다 드러내고 홀가분해졌으면 좋겠다는 "무소유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요즘. 나의 무소유를 실천하는 방법은 간단. 뛴다. 숨이 헉헉 찰때까지. 나는 체육인이 아니라서, 숨이 헉헉 잘도 찬다. 

덧,  글의 발췌는 법정스님 "무소유"
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