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2010. 4. 2. 23:56


1. Don't judge me.(혹은 Don't be judgemental.)
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MJ가 말했었다.

2. 내가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99%정도 같은 종류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쳐서다.
"니가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a가 b와 처음 싸웠을 때의 이야기를 하소연 하듯이 했다.
"제가 막 화를 있더니 b가 뭐랬는지 아세요? 난 너한테 나에게 화낼 권리를 준 적 없어. 제가 얼마나 황당했다구요."
당시엔 내가 깔깔대며 마구 비웃어줬는데 사실은 나도 한통속이다. 우리 둘이 한통속이면 그건 모두 아빠 탓. )

저 말은 두가지 가능성을 내포한다.
 (1)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에서 그런 말을 타인에게 하는 것은 실례라고! (don't even try to rationalize everyhing by relativism. )

 (2) 네 기준에 맞춰 나를 판단한 다음 그렇게 말하면 안돼(don't judge me.)

3.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저 두 규칙은 깔끔하게 정리될수 있다.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가치가 존재하다면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논리와 생각은 내 것만큼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문제는 절대적인 가치라고 믿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절대적인"이라는 말의 의미상 모두가 공감할 만한 것이어야 하는 거야,라는 전제가 들어가면 결국 우리는 상대주의의 오류에 빠진다. (세상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란 건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의 모든 행동들은 존중 받아 마땅해진다.

4. 상대주의가 곧 포스트모더니즘 나라의 스카이스크래퍼 쯤 된다지만 상대주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순간에는 "널 이해해"가 아니라 "이 일은 네가 잘못한거야"가 필요하다.  "내 인생" 이라고 이름표를 써붙인 자전거는 <참 잘했어요>와 "네 잘 못이야"라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균형 잡기가 백배는 힘들다.)

5. 하지만 이 고집("네 잘못이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때문인가보다. 나는 결코 이 바람 저 바람에 춤추는 갈대같은 사람이 아니다. 덕택에 정(釘)도 많이 맞아보고 미움도 받은 적 있다. (물론 미움은 누구나 받은 적 있다 ㅎ) 변명이라면 내가 단 한번도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안해본 것은 아니라는 것. 가끔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저건 아니라고 생각해도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하고 넘어간적이 있었다.

6.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내게 다가오는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상상과 기대에 맞추어 돌아가지도, 이론과 논리에 맞추어 돌아가지도 않아서, 때로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과 사고들이 그 잔인함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니, 사실은 그것들을 마주 대할 용기 부족 했던 것 뿐. 알면서도 번번히 덤불 숲에 고개만 쳐박고 아무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 한 마리 타조가 된다.

7. 가끔은 누가 편하게 사는 요령들만을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생각한다. 그게 바로 오직 상대주의만을 신봉하라는 것일까?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지 오늘도 불필요하리 만치 많은 감정의 피를 흘리면서 살아가고,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믿어버리고, 조금 더 솔직하고 진실했다면 우리가 좀 더 맑고 투명한 사람으로 서로에게 기억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한다. 사실은 내 마음에 대못 박은 저 놈도 똑같이 그렇게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물 샐틈 없는 논리로 자신을 포장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에는 상대주의와 절대주의를 제멋대로 섞어서, 거기에 가득 오해와 거짓과 믿음과 애정을 버무린 드레싱을 쳐가면서 나는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너도, 네가 믿는 가치를 손에 쥐고 열심히.

8.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기에는 혹은 절대주의인가 상대주의인가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단순 명료할 때가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상대를 화나게 했다면 욕 먹을 수 있고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 건 돌에 맞은 개구리를 죽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의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개구리의 죽음에 내 책임은 콩알만큼도 없는 걸까?

결론은 세상은 아주 분명한 형태로 지금, 내 앞에 현실로 보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괴로워도 기꺼이 머리를 쳐 박을 찔레나무조차 마련해 주지 않은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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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