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2009. 8. 30. 02:45


교보문고에서 두툼한 플라스틱 끈에 묶인 책들이 날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직원에게 <이거 지금 살 수 있어요?>라고 물어봤다. 난 분당 교보에서 1Q84를 처음으로 산 손님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전부터 1권은 되게 재미있고 2권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어딘가에서 주워들었었다. 2권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그것도 9월 8일 출간 예정이니 지금부터따져서도 열흘 이상 남았다.) 이미 그런 말들이 떠도는 것은 우리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얼마나 인기있는 작가인지 실감케 해주는 대목이리라.

모든 문학작품이 그렇듯, 하루키처럼 엄청나게 많은 수의 독자층을 확보한 사람도, 역시 그 엄청나게 많은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식으로 작품을 받아들인다. 나로서는 스물 다섯 이후에야 하루키의 진가를 알게 된 케이스인데, 그 직전까지 내게 하루키는 "가벼운 일본 문학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였다. (스물 다섯에 깨달은 것은 하루키는 하루키고, 일본 현대 문학은 어쨌든 가벼운데, 그렇게 치면 현대 문학은 몇몇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가볍디 가벼워서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버릴 가벼운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뿐이다. 이게 현대 뿐이겠는가. 언제나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는 한두명 뿐이지 않는가) 아무튼 각설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현실에서 나의 고민과의 접점이 점점 많이 생겨나서 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주인공이라면 반항할 수 없는 힘에 끌려 엄청나게 몰입할 수 밖에 없으니. 1Q84에서도 개인의 삶/역사/문학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소설 전체를 가로지르며 <내가 사는 이 세계가 진정한 세계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데, 그러면서 1984년 일본과 1Q84년의 일본이 묘하게 겹쳐지기 시작한다. <역사는 고쳐쓸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강하게 말하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개인의 기억 역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어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의 불확실함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엮어지는데, 아직 1권을 읽었으니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추측하기는 이른 것 같다.

몇 일전 H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H가 말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나 일본적이지 않은 일본 작가 아냐? 그러니까 내 말은, 일본 밖에서 객관적으로 일본을 그리려고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라고. 우리는 늦여름의 밤에 H의 차로 향해 걷고 있었기 때문에 격렬한 문학토론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의견에 갸우뚱한다. 내가 보는 누구보다 사회성이 짙은 이야기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 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탄탄한 이야기적 구성이 그 많은사람을 그의 팬으로 이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문학평론 같은 것은 잘 읽는 편이 아니니 문학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의견의 대세는 알 수 없다.

소설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한쪽은 여자인 아오마메, 또 한쪽은 남자인 덴고이다. 아오마메가 최근(1권중간쯤 -_-; ) 친구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은 아유미. 아오마메와 아유미의 대화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지워버리고 싶은, 혹은 벗어나고 싶은 과거에 대해서. 아오마메의 독백이 인상적이었는데, 과거의 그 기억으로 부터 자신은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뿌리가 그 기억에 있어 평생 그 곳으로 부터 양분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것 같다고. 소박하게 아오마메의 뿌리가 그곳에 있지 않은 것만 누군가가 확실히 해주고 이야기를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결국 주인공에 감정이입중이다. 열심히.

괜히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옳은 것이 아니듯이, 명성이라는 것이 또 괜히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일단 재미있고 (이 말인 즉슨 1Q84 역시 1권은 확실히 재미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읽고나서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을 던진다 (본인도 책에서 말한다. 작가란 질문을 던지는 자라고.) 어찌되었든 내가 소설을 판단하는 큰 기준은 그것 두개니까 나는 좋은 점수를 주어야지. 오랜만에 읽은 만한 소설책이 나와서 기분이 좋다. 그리고는 새삼, 최근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것은 읽을 만한 작가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핑계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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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