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가을에 얽힌 추억에 대해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가을이 아니라 여름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본다.
정확히 날짜는 생각 안나지만 한 여름의 어느날이었다. 나는 그가 보고 싶었다. 그는 그 순간 공항에서 자신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때 내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볼 것 같다고 느낀 것은 그 순간에는 어느정도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분명 나를 보면 놀란 토끼눈이 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올테지? 그가 나를 강하게 거부 할까, 또 어이없는 짓을 저질렀구나라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귀엽게 봐 줄까 나는 좀처럼 확신할 수 없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뛰어 나갔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한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는 데만 집착했다.
그러나 평소같으면 1분에 한대씩 지나가는 마을 버스는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내가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뛰어가고 있을 때 공항버스가 막 출발했기에 나는 한참을 허무하게 그 버스의 꽁무니만을 바라봐야했다. 그리고 15분마다 한대씩 있는 버스가 하필 그 시간만 그 다음 차는 30분 뒤였으니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그는 그 날 그와 나를 못 만나게 할 작정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꽤 오랜동안 다시 만나지 못했고,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서로에게부터 너무 멀리 걸어나와 밤톨같이 쪼매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결론이 어찌 되었든 공항에 제 시간에 갈 수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땀을 손 끝으로 걷어올리던 그 순간, 땀에 부딪혀 반짝이던 그 작열하던 태양을 잊지 못한다. 그 날은 내게 생에 가장 뜨거운 여름날도 기억될 것이다. 몸도 마음도 완전 연소해버렸고 그와 함께 그 철없던 사랑도 한 더미 재가 되어 사라졌으니까.
그는 내가 그리 아웅바둥 거리며 그를 만나기 위해 뛰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할 테지만, 괜찮다. 그 날의 태양은 나를 위해 그리도 뜨거웠던 것이다. 내 청춘의 마지막 장에 그 열기를 각인 시키기 위하여. 그 토록 뜨거웠던 순간이 나를 위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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