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배꼽 언저리에 좁쌀 반만한 무언가가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뭐가 묻은건가하고 톡톡 털어내봤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뭘까 저건?
잠시 고민하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떠올렸다. 배꼽의 때. 이효리가 세로 배꼽을 공개하기 전까지 우리 모두 자신의 배꼽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며, 그게 아니어도 모두의 배꼽이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테다. 하지만 그녀의 용감함 행동은 세상을 바꿨고, 나는 안다. 나는 배꼽에 때가 잘 끼는 타입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손톱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른쪽 검지를 그 좁쌀 반만한 살짝 튀어나온 녀석에게 들이댔다 딱 하는 소리와 존재의 언저리에 손톱으로 긁은 하얀 선만을 남기고 그녀석은 사라졌다. 굿바이 배꼽의.

헉. 그런데 그자리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건 배꼽의 때가 아니었다. 나는 생살을 손톱으로 뜯어낸 것이다. 휴지. 휴지.

문제는 그 다음부터 너무너무 졸려서 눈 감자마자 잠들고 어제 하루종일(새벽2시부터 오후 5시까지 15시간)을 자고도 다시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너무너무 일어나기 힘들었다. 결국 늦잠.

난 몰랐던 것이다 나의 넘치는 잠이 분출하고 싶어 배꼽의 살 넘어 분화하려할 때 나의 배꼽의 때같은 그 살이 얼마나 안간 힘을 쓰며 그것을 억눌러왔던 것인지.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나는 잠에 취해서 이틀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패전했다고 용맹한 장수를 기리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대, 잘가게.
다음 생엔 멋지게 다시 만나세.
아듀. 배꼽의. 배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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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