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2010. 5. 17. 01:57
1.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데, 이게 어디까지 신뢰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살면서 수백만 가지의 변화에 적응한다. 그렇지만 가끔 엄청나게 중요해서 꼭 감당해 내야 하는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하니까, 인간이 적응의 동물인지 비적응의 동물인지는 모를 일이다.

2. Y를 만난 후에는 블로그를 홀라당 까먹고 샌디에고-LA-샌프란으로 이어지는 수다에 여념이 없었는데, 어제 문득 든 생각은, 여기가 써니베일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일 비행기를 타면 아쉬움과 함께 그곳이 써니베일이었음이 분명해 지겠지.

3. 비행기 표를 사려고 마음 먹는 때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에 올라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낯선 곳으로, 행복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극단적인 장소에 갈 것 같지만 막상 비행기표를 사고 나면 그 순간부터 기대는 현실이 되고, 굉장히 귀찮아 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놓치기는 쉽지 않고 나는 단 한 번도 비행기는 놓친적이 없기도 하다.

4.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여행-특히 해외-은 <거기 가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금새 생각이 쥐구멍으로 돌아들어가 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어도 내가 할 일은 그다지 없다.
그러니까 이 깨달음은, 내일 20일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생겼는데, <아, 근데 거기 가서 뭐하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얻게 되었다랄까. 나는 이곳에서 여기 붙고 저기 붙는 떠돌이 인생에, 베실베실 웃으면서 밥을 얻어먹는-식당이든, 오빠네 부부로든, Y네 부부로든- 형편인데 마치 이 곳이 나의 현실이고 일상인냥, 내 진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낯설어 했으니, 적어도 "미국 땅에는 완벽 적응". 하지만 "현실로부터는 도피" 상태랄까.

5. 인간은 상황이 주어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데, 그게 어떤 변화가 주어저도 적응 할 수 있다와 같은 말일까? 11인치 노트북 모니터에서만 글을 쓰다가, 아무튼 몇 인치인지대강도 감이 안 잡히는 SONY 티비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뭐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출발 목표를 10시로 잡은 것은 나 혼자만 아는 사실인데, 안방에서 그들이 마치 10시에 제깍 "이제 나가자"라고 말해 줄 듯하니 적응을 위한 노력에 조력자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6. 그러나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테고, 분명 또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혹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일상이 아니더라도, 어떤 세계로 들어갈 테고, 그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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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