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2010. 6. 7. 23:57

#13. 바다여, 바다여- 아이리스 머독 (06.07)-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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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바다여>는 너무 재미있는 책인데, 이유는 알 수 없게 펴기만 하면 나를 잠에 빠뜨리고는 했다. (분명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유를 재고해 보자면, 아마도 <세계문학전집>리스트에 들어가는 책 모두가 가지고 있는 조금 옛날 말투? (그런데 도대체 뭐가 조금 옛날 말투인지는 잘 모르겠다)

줄거리는 찰스는 한 때는 꽤 잘나가는 연극배우였고, 훗날 연출가로서 더 큰 명성을 가지게 된 사람인데, 갑자기 은퇴하면서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늙어죽기로 결심한다. 그는 평생 난봉꾼으로 살아왔는데, 그게 자신을 버린 첫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녀를 구출해서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스토킹을 시작한다.

아무튼 이 남자, 찰스의 행동은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 스토킹인데,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는 책을 다 읽으신 후에도 그 생각을 못하시다가, 내가 <완전 스토커야, 싸이코 싸이코>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렇구나! 그게 스토커구나!> 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신생어를 아는 것과 적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것이다.

아무튼 저 줄거리 요약을 보며 누군가 이 책을 뽑아들었다가 또 한바탕 나는, 재미없는 책을 추천하는 여자가 될까봐 덧붙이자면, 아이리스 머독이라는 작가의 삶의 궤적을 배경으로 하면 확실히 이해되겠지만, 책 내내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하고, 그 대답들에 대한 철학적 논쟁들이 이어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어느정도의 환상적인 속성,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두 사람이 같이 하면서 만들어지는 어느정도의 현실적인 속성-떄로 상대를 증오하고, 멸시하고, 파괴하려 드는 것,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그리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기적인 사랑과 이타적인 사랑,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 등등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명성의 이유는 끝맺음에 있다고 생각하는데-많은 책들이 시작은 화려하지만 끝은 시시하게 끝내버리니까-이 책은, 결국 찰스가 자신의 미친짓을 깨닫고 어떤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에 대하여도 깨닫지만, 그렇지만 결국 찰스 자체는 변하지 않고(사람은 변하지 않아!) 계속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게 된다.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랄까, 계속 자기 방식대로.

나는 내가 일종의 미친 상태에 가까웠지만 아직 미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강박관념의 한 종류이다. 강박관념은 마음이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굴러가지 못하게 마비시킨다. 자연스럽고 열려 있고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 넘치는, 존재의 어떤 상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의가 바로 합리성이다. 나는 내가 전적으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고민스러운 생각들을 계속할 수 밖에 없으며, 환상과 의지라는 동일한 쳇바퀴 안에서 계속해서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정신이 말짱했다. 그러나 나는 이 기계적인 동작을 멈출 만큼 제정신인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다.
<몇 페이지인지 안 적어놨다--;>

우리의 결정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파멸시킨다 p377

앞에서 내가 얼마나 이기주의자로 보였을까? 그러나 내가 그렇게 특이한가? 우리는 이성보다 더 훌륭하고 비밀스럽고생명력이 넘치는 분주한 내적 본질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자기 만족이라는 빛에 의해 살아가야한다. p397

물론 이 수다스런 일기는 외관에 불과하다. 질투, 양심의 가책, 공포,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도덕적 실패등 내부의 파괴를 숨기는, 매일 미소짓는 얼굴과 같은 문학의 등가물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면이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약간의 용기도 생산할 수 있다 p400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무엇인가가 끝났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녀에 대한 나의 새로운 사랑, 나의 두 번째 사랑, 나의 두 번째 '행운기'는 내가 착각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가련히 여기고, 망가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내가 아낄 수 있고 매달리거나 잡아 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겼으며, 실제로 완전히 잃었었다. 만일 내가 그녀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해도 그녀가 빛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정점에서는 매우 숭고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 빛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빛은 사라졌으며, 기껏해야 늪에서 가물거리는 불빛이고, 나의 위대한 '등불'은 일종의 망상이 되었다. 그녀는 가 버렸고,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유령 헬레네를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On n'aime qu'une fois, la premiere. 그 어리석은 프랑스 농담 때문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을 했던가!

무엇이 변화를 가져왔을까? 아주 조용히, 그리고 자동적으로 모든 사물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무자비한 움직임인가? 타이터스의 죽음이 하틀리를 '빼앗아 갔고' 그녀 마음속에 살아남은 그가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고 기록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녀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점차 부식시키는 악마적인 불결함이, 그녀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녀로부터 나아서 그녀를 위하여 또한 나를 위하여 우리를 영원히 헤어지게 했다.이제 나는 그 불결함 때문에 그녀를 영원히 추하고, 단정치 못하고, 곰팡내가 나고, 더럽고, 늙은 것처럼 여긴다. 이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옳지 못한가! 그녀의 잘못도 아닌데, 아무리 따져봐도 잘못은 나한테 있다. 내가 내 악마들을, 질투의 바다 뱀들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어떻든지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나의 용감한 믿음은 힘을 잃고 사라졌다. 모든 것은 하찮은 것으로, 이기적인 무관심으로 퇴색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듯이 나도 그녀를 조용히 멸시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진심으로 숭배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도 가끔 우리는 남몰래 멸시한다. 토비와 내가 제임스를 멸시하듯이 놀랄 만큼 필요한, 우리 자아의 건강한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남을 멸시한다. p.414-415



 

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