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2009. 12. 17. 20:29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상세보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아주 간단하게 정리 할 수 있다.
아 역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작들이랑은 궁합이 맞지 않나보다.
라고,

그러나 첫페이지부터 15페이지까지는 너무 좋아서 한 5번쯤 다시 봤다.
역시. 그의 문장력은 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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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09. 11. 23. 07:01
"내 자신의 역사 기록 가운데,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인 '19세 미만 관람불가' 부분을 읽는 기분이었다. 부분적인 거짓들과 이해할 수 없는 반쪽 진실의 단편들로 구성된, 절반은 베일에 가려진 인생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나는 매일 같이 보아온 그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 숨겨진 애매모호함과 비밀을 처음으로 밝혀내는데 나 또한 한몫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마터면 그 사진 앞에 무릎 꿇을 뻔 했다. 그 흑백사진 속에서는 어머니가 수녀원의 일원이었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나는 그저 입을 다무는 것 만이 역사상의 최고의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근본적인 생각의 복잡한 삼각법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었다."
- p155


사우스 브로드-팻콘로이(11.20)
사우스 브로드. 1 상세보기

전 2권.  원제는 South of Broad 인데 of는 왜 홀라당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 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음. 500~600페이지에 가까운 거대한 두께의 책이 2권이나 있는 것을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한 느떄 심정을 전혀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나의 올해의 소설>안에 들어갈 것 같다.

"몇몇은 그가 그 유명한 풋사랑에서 헤어나기만 한다면 진지하게 교제해보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그는 아직도 그 어떤 남자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여자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조소했다. 하지만 그는 찰스턴 항구 조류에 갇힌 튜브에서 옷을 입은 채로 떠다니던 그 열일곱살 때와 정확히 똑같은 감정이 일지 않는 한 그 어떤 여자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고 있었다."
-p 175 (이 소설에서 가장 달콤한 레오의 아버자의 연애이야기)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유년시절의 추억들과 운명의 소용돌이,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머무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생각하는 많은 주제들이 책에 묻어 있어서(선택/운명/영원을 꿈꾸지만 실패하는 것/인간의 능력 밖의 것들/이야기의 가치 등등) 더 재미있게 보았다. <운명의 비정함>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책장을 덮은 나로서는 엄청 행복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한데 묶었던 힘은 우리를 갈래갈래 찢어놓기도 하고, 우정에 한희를 가져다 주는 미묘함과 무분별 그리고 한계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나는 친구들 중 일부가 다른 사람들과 더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음을 알아챘고 그것은 대부분 맞았다. 이듬해 5월 우리는 멋있고 자기 실현적이며 놀랄만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졸업식장을 떠났다. 우리는 이제 막 들어가려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바꾸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괜찮게 해냈다. 우정은 우리를 한동안 지탱했지만, 그 우정도 번쩍이는 광채를 다소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인생의 중반기에 서로를 소리쳐 부르며 또 다시 찾게 되는데, 그렇게 된 계기는 노크소리 같이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p251



무엇보다 책을 읽어가면 정말 그 장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묘사력에 감탄했다. (내가 가장 종하하는 부분은 주인공 레오가 신문 배달을 하면서 동네를 도는 것에 대한 묘사다. 훗날 동네 사람들은 그날의 레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설명하는 부분) 글을 정말 "아름답게" 쓰는 능력을 지닌 작가인듯. 그리고 미국의 남부에 대한 애착과 남부 유머의 매력에 쏙 빠질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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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09. 10. 16. 11:24

불안-알렝 드 보통(10.16)
불안 상세보기
어글리트루스(10.12)
어글리 트루스
감독 로버트 루케틱 (2009 / 미국)
출연 제라드 버틀러, 캐서린 헤이글, 셰릴 하인스, 브리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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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영화는 홍콩느와르 필름일 것이다. 그곳에는 정의도 선도 없고 그저 승자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난무하는 액션이나 마음이 찢어질듯한 비극적인 운명이 아니어도 추악한 진실은 여기저기 산재한다.
예를 들면 그렇다. 어글리 트루스에서 제라드 버틀러가 말하는 모든 연애의 법칙은 80%정도는 들어맞는다. 여자는 남자를 안달하게 만들어야 하고,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면 왠지 상대는 멈칫하는 것이 정석인데 적극적인 역할이 여자일 경우 정확도는 더더욱 올라간다. 남자는 그들도 인정하듯이 시각적인 것에 약해서, 결국 어떤 여자를 원하냐면, 예쁜 여자를 원한다는 것들 말이다. 억울하면 고치렴. 요즘은 과학 기술도 좋단다. 등등등. 영화는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은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사실 영화속에서 제라드 버틀러는 이제 앞길이 창창한 앵커고 캐서린 헤이글은 <절대로 못생기지 않은> 본판은 좋은데 꾸미지 않은 여자일 뿐이다. 그말인 즉슨, 능력있는 남자와 예쁜 여자의 조합이다.마치 수많은 연애의 법칙들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랑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모든 연애의 법칙이 맞아요! 라고 하고 있는 것과 같다랄까. 그래서 본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으나보다 <오랫동안 솔로인 여자들은 꼭 봐줘야할 거 같아>

본능적으로 사람은 사랑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조건없이 동그랗고 보송보송한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주어지는 맹목적인 사랑=부모의 사랑을 항상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부가가치까지 생산해야"만"하는 나이가 되면 누구도 맹목적으로 사랑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하단다. 이것이 알렝 드 보통이 말하는 <status anxiety>. 그래서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지위, 명예, 돈 같은걸 추구한다. 완전 경쟁의 물질 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손에 쥔 모든 것이 능력이고, 그리고 사랑과 관심을 받을 증거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왜 더 불안해 하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기 자신 그 자체"로 사랑하는지 "지위.명예.돈 때문에" 사랑하는 척 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불안의 늪에 빠진다.

사실 가끔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 들기는 한다. 쉽게들 여자는 나이 30을 찍으면 오르지 못할 내리막을 내려간다느니, 그 때부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느니 라고 말하지만-그 나이는 점점 뒤로 가서 이제 32로 변해간다-그냥 그것은 평균적인 한국여자에 비해 구리기 그지 없는 평균적 한국 남자들의 이데올로기 발언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적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가 19, 20살때의 그 가슴떨림이 없어지고 있는 것을 느껴서 아닐까.(아 불안하다.)

그렇지만 <너는 불안할 수 밖에 없어>라는 책 한권과 영화 한 편을 보고도 자세는 변할 생각이 없으니 난 정말 불안해야만 하나보다. 아무리 주변에서 <지금 이대로는 안돼>라고 말하지만 나는 가장 완전하게 내 자신으로 있을 때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고 고집을 굽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편안 옷만 입지는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의 변명 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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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09. 10. 6. 18:35

1. 철학+심리학+뇌과학.
   3박자를 갖췄으니 내가 좋아하지 않고, 혹은 읽어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던 책.

  나는 누구인가: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할 34가지 질문(10.01)
나는 누구인가 상세보기

2. 3장으로 나누어져서 총 34가지 질문을 하는데 내용은 독립적이나 앞 질문과 이어지며 뒷질문에게 바톤을 넘기는 형식이다. 철학적인 질문과 그에 대답한 대표적인 철학자의 논리, 그리고 과학적으로(심리학 실험에 의해 통설이 된 사실들이나 뇌과학 분야의 해설들을 인용한다) 그 질문에대해서 얼마만큼 밝혀졌는지가 이어진다.
등장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의 재미가 쏠쏠하고-언제나 느끼지만 후대에 이름을 길이 길이 남긴 이들 중에 살아있을 떄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철학자는;; 게다가 삐뚤어진 철학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삐뚤어진 이야기들은 얼마나 또 재미있는지)

3.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감정에 관한 것.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고 가정하며 합리적인 이성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비로소 인간답다고 취급하지만 사실상 감정은 제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려사항에서 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가 제어하거나 만들어낼 수 없지만 사실상 우리의 객관적 판단이나 논리는 모두 감정이 앞서서 결정해 놓은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라고. 아 이거 정말 맞는 이야기야! 라고 엄청 공감하면서 2번 읽었다는.

4. 재미있는 책이지만, 나로서는 관심분야 3종세트였기때문에 다른 이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다. 이런거 섣불리 추천하면 혼나던데. 쉬운 입문서라기 보다는 조금 더 깊게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더 좋은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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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09. 9. 19. 00:33

1. P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 의외로 인문 교양 서적 베스트셀러 2위에 올라있더라. 김정운씨의 목표라던 캠핑카 사기에는 성공할 듯. 오랜만에 깔깔깔 웃어대면서 책장을 잡자마자 끝까지 읽었는데, 유난히 빠르게 봐버린 이유는 아마 내 인생관과 딱이라서 일 듯. 그가 말하듯 행복해지기 위해 천성이 50%, 생활태도가 40%, 환경이 10%면 난 언제나 90%이상이 행복함 카테고리에 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너무나 재미를 추구해서 문제 아닌가 -_-;

2. 타켓층은 중년(정확히는 40대후반부터) 남자. 우리도 행복해져야합니다. 라를 외친다. 그런데 40대후반과는 너무나 상관없는(우리 아버지는 60대후반, 오빠는 30대 초반, 나는 20대 후반이 아닌가 -_-;) 내가 이리도 재미있게 읽은 이유는 뭘까?

3. 내 스스로의 답은 인생관이 같아서. 또 다른 이유는 글 자체가 재미있어서.

4. P의 말은 그래. 40대 후반이 문제가 아니야. 남자는 언제나 똑같아. 남자는 언제나 똑같은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넌 여자라고? 결국 남자랑 같이 살잖아?
그렇지. 한 쳅터를 넘길 때마다 큭큭대며 내가 아는 남자들에 매칭 시킬 수 있었지. 가깝게는 아버지, 오빠, 멀게는 남자인 친구들까지.

5. 그래서 여자들에게도, 남자들에게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는 책.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게 딱 이거야! 라고 외쳐도 사실 사람은 잘 안 변하지. 그게 바로 행복의 50%를 좌우하는 천성. 그리고 나는 너무 이 책에 공감해서 문제니까, 이것이랑은 정 반대를 말하는 미국식 자기계발서를 읽을 필요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김정운(09.18)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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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09. 9. 17. 06:30

1. 원제는 Complication, 한국어판 제목은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  그러나 특별히 현대의학을 고발하고 있지는 않아서.

2. <New Yorker>에 연제한 글들을 추려 모아 만든 책이라는데 적당한 길이의 글들이 모아져있는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책 전체의 짜임새도 좋다. 기본적인 의사라는 직업이 직업적 전문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부터 병과 치료 자체의 불확실성으로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3. 책의 내용에서 조금 비껴져 있지만 인상 깊은 부분은 그가 의사라는 직업과 글쓰기를 같이하면서 힘들었었던 만큼 좋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부분이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을 통해서 고민하고 의미를 찾으면서 자신의 직업(의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쁜 의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4. 일종의 과학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의학과 의료사례를 소재로 하여 풀어나가기 때문에 더욱더  담백하고 사실적인 문체가 돋보인다. 그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문장들과 그의 직업에 대한 의식,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이 좋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태도면에서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뭐 물론, 과학자에 대한 본능적인 호감도 무시 못하겠지만) 그의 책이 한 권 더 있는 것을 확인하여, 살 것인가 말것인가 고민중.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09.16)
나는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상세보기

5. 좀 더 많은 의학 에세이를 읽고 싶지만, 내가 의학업계와 관련이 적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좋은 책을 찾기가 어렵기만 하다. 누구나 아플 수 있지만 치료하는 방법은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의 지식같아서 안타까울 따름. 책에서도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의사의 간섭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우리나라 실정에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지조차 잘 모르겠다. (뭐 이건 내 상식 부족을 공표하는 짓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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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2009. 9. 16. 01:46

1. 그와 만난 후, 나의 몸은 정직하게 이 스트레스를 받아들여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정말 글자와 글자를 눈으로 확인한후 그것이 단어임을 인식하고, 다시 단어와 단어로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것을 30초마다 한번씩 확인해가면서 바우돌리노를 읽었다. 하필이면 왜 그 상황에서 바우돌리노였어?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 상황에서는 무슨 책이든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을테니 결국 뭐였든 상관없었을꺼야.라고 대답했으리. 아무튼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인내심을 가지고 읽은 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바우돌리노.

2. 움베르트 에코는 실은 소설은 단 4권을 썼는데-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전날의 섬을 안 읽은 나로서는 아직까지 1등은 푸코의 진자. 미안하게도 바우돌리노에 대한 평가는 절대로 객관적이 될 수가 없겠지만, 일단은 꼴지.(그렇지만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친구는 자기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깔깔 거리면서 책장을 넘겼다고 증언했다)

3. 일단 바우돌리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실제 중세 유럽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이나, 전해지던 이야기들. 그 모든 설화와 신화들이 뒤엉켜 탄생된 완전한 거짓 인간, 그러나 모두가 아끼던 인간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우돌리노가 실존 인물인지, 바우돌리노의 인생이 진짜인지를 소설 자체에서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소설의 결론은 그것이다.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가 역사에 남는다고 좋을 것이 하나도 없소, 그러니 엄청난 거짓말쟁이가 등장하여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를 하게 놔 두시오. (당신이 믿든 말든 당신의 자유요!)

그렇지만 작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우돌리노라는 인간에게 긍정적이며 바우돌리노의 인생을 응원한다. (그래서 결국 바우돌리노는 히파티아를 찾아, 요한 사제 왕국을 찾아 다시 떠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움베르트 에코의 화신이기도 하는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하는 "거짓말=이야기"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에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잊기 위해서 말입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이 결국 이 세계마저 바꿔 놓게 된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p 169)

4. 바우돌리노는 3번의 사랑을 겪는다. 첫째는 그의 양어머니이기도 한 황후 베아트릭스, 두번째는 고향 마을의 어린 처녀였던 콜란드리나, 그리고 마지막은 반인반양의 히파티아, 베이타릭스가 그가 범접할 수 없었고 그저 꿈꿨던 이상의 사랑이라면, 콜란드리나는 친밀감과 편안함의 사랑이고, 히파티아는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이다. 히파티아가 바우돌리노와 동등한 입장에서 논쟁하며 서로가 상보적인 역할이 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희대의 거짓말쟁이인 바우돌리노의 상상력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인물-히파티아를 상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이라면 콜란드리나는 편안한 가족같은 사랑이다. 콜란드리나는 바우돌리노를 따르고 존경하며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운명앞에서 좌절된다. 바우돌리노의 첫사랑이자 황후의 경우, 그는 현실의 베아트릭스가 아닌 자신의 상상속의 베아트릭스를 사랑한다.(실제로 자신이 1인 2역을 하며 편지를 주고 받기도 한다) 그래서 베아트릭스에 대한 사랑이 깨어지고 더 이상 그녀에 대한 상상이 무의미해지며, 따라서 그의 다른 상상을 쫓아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요한사제의 왕국을 찾는 모험이다. 바우돌리노는 이것을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내게는 가장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뭔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 나는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는 못했나보다.

"이제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치유된 상처와 같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내게 기분 좋은 추억을 불러 일으켰지만 떨림은 없었습니다. 나는 고통없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고 아픔을 맛보지 않고도 그녀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내가 완전히 어른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청년기의 모든 열정이 잠재워졌습니다. 그 사실이 유감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조금 우울했을 뿐입니다. 나는 서슴지않고 우는 비둘기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을 나누는 계절은 끝이 난 것이지요. 이제 몸을 움직여 바다 너머로 가야했습니다."

5. 결국 바우돌리노의 한 평생은 그의 모험의 끝이자 프리드리히를 살해한 범인을 밝히는, 소설의 첫부분-역사학자 니케타스와의 만남-으로 돌아오는데, 프리드리히의 죽음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가능성을 남김으로써 다시 한 번 <바우돌리노>라는 소설 자체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엔딩은 결국 바우돌리노는 꿈과 상상, 모험과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움베르트 에코의 박학다식과 특유의 유머감각들이 부분부분 빛을 바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다시 한 번 등장하는 기독교적 논쟁들도 프리드리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라는 흥미진지한 소재로 덮어씌워 이끌고 가니, 이 정도의 이야기를 이 정도의 재미로, 일반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에코 밖에 없다고 다시 한 번 느낀다.

바우돌리노 - 움베르트 에코(09. 15)
바우돌리노(상) 상세보기


6. 그렇게 바우돌리노는 요한 사제의 왕국을 찾아 떠났는데, 나는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있다. 책을 다 읽었지만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책의 효과는 미래로 나를 밀어주지 못하고, 나는 묵직한 무게의 고집으로 제자리에 있는다고 우기는데, 그래봤자 달라질 것이 하나 없는 현실임을 알아서 조금 슬프다. 아, 머리를 흔들어 잡념들을 털어버려야 할텐데.

덧, 아이다움에 대한 움베르트 에코의 통찰(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며 깔깔 웃어줬음)

>>누비아인들은 어린아이들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하고 싶어한다(5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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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09. 8. 30. 02:45


교보문고에서 두툼한 플라스틱 끈에 묶인 책들이 날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직원에게 <이거 지금 살 수 있어요?>라고 물어봤다. 난 분당 교보에서 1Q84를 처음으로 산 손님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전부터 1권은 되게 재미있고 2권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어딘가에서 주워들었었다. 2권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그것도 9월 8일 출간 예정이니 지금부터따져서도 열흘 이상 남았다.) 이미 그런 말들이 떠도는 것은 우리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얼마나 인기있는 작가인지 실감케 해주는 대목이리라.

모든 문학작품이 그렇듯, 하루키처럼 엄청나게 많은 수의 독자층을 확보한 사람도, 역시 그 엄청나게 많은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식으로 작품을 받아들인다. 나로서는 스물 다섯 이후에야 하루키의 진가를 알게 된 케이스인데, 그 직전까지 내게 하루키는 "가벼운 일본 문학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였다. (스물 다섯에 깨달은 것은 하루키는 하루키고, 일본 현대 문학은 어쨌든 가벼운데, 그렇게 치면 현대 문학은 몇몇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가볍디 가벼워서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버릴 가벼운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뿐이다. 이게 현대 뿐이겠는가. 언제나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는 한두명 뿐이지 않는가) 아무튼 각설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현실에서 나의 고민과의 접점이 점점 많이 생겨나서 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주인공이라면 반항할 수 없는 힘에 끌려 엄청나게 몰입할 수 밖에 없으니. 1Q84에서도 개인의 삶/역사/문학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소설 전체를 가로지르며 <내가 사는 이 세계가 진정한 세계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데, 그러면서 1984년 일본과 1Q84년의 일본이 묘하게 겹쳐지기 시작한다. <역사는 고쳐쓸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강하게 말하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개인의 기억 역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어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의 불확실함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엮어지는데, 아직 1권을 읽었으니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추측하기는 이른 것 같다.

몇 일전 H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H가 말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너무나 일본적이지 않은 일본 작가 아냐? 그러니까 내 말은, 일본 밖에서 객관적으로 일본을 그리려고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라고. 우리는 늦여름의 밤에 H의 차로 향해 걷고 있었기 때문에 격렬한 문학토론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의견에 갸우뚱한다. 내가 보는 누구보다 사회성이 짙은 이야기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 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탄탄한 이야기적 구성이 그 많은사람을 그의 팬으로 이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문학평론 같은 것은 잘 읽는 편이 아니니 문학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의견의 대세는 알 수 없다.

소설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한쪽은 여자인 아오마메, 또 한쪽은 남자인 덴고이다. 아오마메가 최근(1권중간쯤 -_-; ) 친구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은 아유미. 아오마메와 아유미의 대화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지워버리고 싶은, 혹은 벗어나고 싶은 과거에 대해서. 아오마메의 독백이 인상적이었는데, 과거의 그 기억으로 부터 자신은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뿌리가 그 기억에 있어 평생 그 곳으로 부터 양분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것 같다고. 소박하게 아오마메의 뿌리가 그곳에 있지 않은 것만 누군가가 확실히 해주고 이야기를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결국 주인공에 감정이입중이다. 열심히.

괜히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옳은 것이 아니듯이, 명성이라는 것이 또 괜히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일단 재미있고 (이 말인 즉슨 1Q84 역시 1권은 확실히 재미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읽고나서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을 던진다 (본인도 책에서 말한다. 작가란 질문을 던지는 자라고.) 어찌되었든 내가 소설을 판단하는 큰 기준은 그것 두개니까 나는 좋은 점수를 주어야지. 오랜만에 읽은 만한 소설책이 나와서 기분이 좋다. 그리고는 새삼, 최근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것은 읽을 만한 작가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핑계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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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 [Subjects] - 소설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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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09. 8. 16. 01:19

예전부터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책이 한 권 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다. 아직 못 봤다. 서점에 고이 포장되어 진열 되어 있어 안을 살짝도 들여다 볼 수 없었던 <후불제 민주주의>를 빌려서 읽던 날,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더 보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정말 우스운 것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보는게 한라산을 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나는 정말 그 책과는 인연이 없는지 어쩌다가 유시민씨의 다른 책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 생겼다.

어느 학문이나 학문 자체의 내용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이 역사라서, 사실 어떤 공부가 하기 싫거나, 어떤 공부를 시작할때 해당 분야의 역사서를 읽는 것은 흥미를 돋우거나 컨셉을 잡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사에 관한 책을 본 것으로 생각나는 것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지식 경제학 미스테리>,그리고 유시민씨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정도. 세 권 다 재미있게 읽었고 한 번 쯤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가장 경제학 주류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고 가장 잘 쓴 책이기도 하다. 유시민씨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흐름과 그 경제학 이론의 발전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잘 연관시켜 설명한다. 단점은 조금 산만한 구성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 것(아마 넣고 싶은 내용은 많으나 글이 더 이상 깊어지면 전문서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잘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경제학을 전공한 유시민씨 입장에서는 이정도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아니 갑자기? 라고 생각되는지도 모르고)이지만 같은 구성이 반복되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그대로 괜찮다. 지식경제학 미스테리는 가장 <역사>서 같고, 고전에서 시작하여 아주 가까운 경제학의 신경향까지 아우르고 있으나, 문제는 발번역;; 가끔 정말 이렇게 오자 교정안하고 책 팔아먹다니, 라는 분노가 치밀어서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번에 읽은 책인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내가 정말 공감한 부분은 프롤로그였다. 경제학 교과서의 산술적 수식들이 너무나 수학적이라서 유시민씨는 도대체 경제학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고. 그런데 사실 경제학이라는 것은 조금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학문인 것이라고. 그래서 경제학은 정치학과 떨어질 수 없다는 말 말이다. 컨셉이 잡히고 나니, 흐름이 더 쉽게 들어오고, 왜 그 때 그 순간 그 경제학자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갔다. 특히나 리카도 vs. 맬서스 논쟁이나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 같은 사람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확 와 닿았다. 인간적으로 정이 갔던 것은 베블런. 왠지 모르겠지만 못생긴데 인기가 엄청 많았다니까? 그리고 역사에서 다시 찾기 힘든 성공한 인생은 케인즈(잘생겼고, 귀족인데다, 머리도 좋고, 돈도 많이 벌었고, 마누라도 엄청 예뻤다. 아~ 그대는 진정 winner~). 안타까웠던 것은 리스트 (엄청 독일을 좋아한 애국자였는데 막상 독일은 그를 멀리 했으니 비극적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부인 -_-; (점점 책의 주제에서 멀어지며 뒷이야기에 집중하려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사회적.개인적 배경과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는 경제학적 주장들으로 엮어주기 때문에, 사실 누군가 경제학에 개념을 잡고 싶다고 말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이제 나는 경제학에 개념을 잡았으니 경제학 공부를 해야지 T-T

유시민,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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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
서재2009. 8. 1. 09:46

1. 그러니까 녀석의 끝멘트는 이거였다.
<야, 나 뭐 해야된다. 내가 다음에 또 전화할께>
전화를 끊고 나서 그 "다음에 또"가 해야할 일을 마친 몇 분뒤인지, 집에 돌아간 몇 시간 뒤인지, 아니면 다시 나에게 전화할 기분이 들 몇 일 뒤인지, 아니면 한국에 돌아올 몇 달 뒤인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좀 기다려봤지만 3시간이 지난 지금도 전화는 오지 않는 것이, 결국 그의 마지막 멘트는 인사치레였을 것이다.(그렇다고 3시간동안 기다린 건 아니다. 정확히 하고 넘어가자 -_-; ) 칵 때려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시간에 대한 오해에 관하여는 유명한 일화가 많이 존재한다. 중동의 누군가랑 점심 먹자고 약속했는데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상대가 나타났다는 비지니스 일화라던지. 우리는 시침이 하루를 24등분하고 다시 그것을 분침이 60등분하는, 전세계 공통 시각을 위성에서 쏘아주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사실 시간도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파악된다. 앞에서의 예처럼 <점심을 먹죠>라고 말하면 각자 점심을 먹을 시간을 떠올리고, 거기에 그 점심을 먹기 위해 미리 만나야할 시간까지 떠올리니 편차가 커질 수 밖에.
 또 다른 유명한 일화는 90년대까지 존재했던 소위 '코리안 타임'. 늘상 시간에 늦는다고 해서 붙여진 오명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 사람들이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생각하는 <빨리빨리>랑 어떻게 공존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공존한게 아닌가? -_-;) 어찌되었든 장하준씨의 <나쁜 사마리안들>은 '정확한 시간관'이란 산업사회가 학습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찍이 농업사회에서는 정확한 시간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해 뜨면 나와서 일하고, 해지면 들어가서 자고. 서구에서도 시계가 보편화 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이 일어난 뒤로, 동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는 공장이 생기고 나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날 갑자기 처들어온 서양애들이 <시간관념이 이렇게 없어서야!> 라고 탄식해봤자 <시계라는 게 뭔디유?>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밖에. 아무튼 그래서 산업화가 덜 진행된 사회는 언제나 시간관념이 없고, 그래서 언제나 게으르다. 식민지를 건설하러 들어온 모든 민족이 자신의 식민지 주민의 나태함을 투덜거렸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듯, '코리안 타임'은 이제 옛날 옛적 이야기.

3. 필립 짐바르도와 존 보이드가 같이 쓴 <타임 패러독스>는 이런, 개인의 시간관에 대한 책이다. 필립 짐바르도는 그의 유명한 SPE(Standford prison experiment)에서 개인의 시간관에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정도를 훌러덩 언급한다음 얼마전 멋지게 이 책을 냈다.
 요는 단순한데, 개인은 각자, 과거를 어떻게 보는지, 과거/현재/미래 중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아시아권의 자살 폭탄자들은 개인의 성격이 삐뚤어져서도, 종교집단에 세뇌 당해서도,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아서도 아니고, 현세를 초월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뒤의 생을 바라보며 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모든 <자살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안중근, 윤봉길 의사와 같은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들, 수도 없이 비행기를 몰고 추락해댔던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이 자살을 할 수 있었던 대는 완전히 다른 이유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재미있었던 것은, 잦은 지각생들은 주로 현재쾌락형 시간관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은 현재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만을 생각한 나머지, 목표(약속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를 하기 위해 반드시 써야하는 비용(이동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현재캐락형 인간들이야, 라는 대화를 같이 했던 친구 Y가 말했다 <응! 순간 이동만이 해결책이야!> 또, 흡연 마약 도박등에 빠지기 쉬운 것도 현재의 최대 자극을 추구하는 현재 쾌락형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 여기서 응용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딱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현재 쾌락형 시간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

4. 개인이 단 하나의 시간관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간관을 가지고 있으나 어떤 것이 더 강한 성향을 나타내느냐의 문제.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어떤 시간관으로 그 상황을 대하느냐가 문제 인 것이다. 시간관의 종류는 6가지다 (과거긍정적, 과거부정적, 현재 쾌락적, 미래 지향적, 초월적, 현재 숙명적).
가장 좋은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과거를 긍정적으로 보고(강한 과거 긍정적), 미래에 뚜렷한 목표를 가지며(강한 미래 지향적),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에 노력하면서 현재의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란다(적당한 현재 쾌락적).

5. 각 시간관의 특성으로 살펴보면 나는 현재 쾌락적 인간이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강한 미래지향적 인간이었다. (현재 쾌락적 수치는 평균보다 살짝 위였다. (시간관에 대해서는 책에 테스트가 있다) 교육은 적절한 시간관을 개인에게 주입하는 것이니까, 우리 스탠포드(짐바르도 아저씨는 스탠포드 교수였다. 정년퇴직 했지만) 학생들도 주로 미래지향적 시간관을 갖더군요, 라고 말했다. 사회에서말하는 성공에 가까운 사람일 수록 미래 지향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이 많단다.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스트레스 참으면서 머리 빠져가며 일하고 나이 50에 심혈관 질환으로 죽는거지? 라고.

6. 대학교 2학년때인가, MT를 갔었다.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마구 뛰었으나,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지 못하고(정말 영화 주인공 같았다) 기차 꽁무니를 쫓아 달리다가 결국 플랫폼에 덩그라니 남겨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MT 자체는 다음 기차를 타고 무사히 갔다)
 얼마전에 JS오빠가 그러지 말고 미국에 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한번 기차를 놓치면 다시 올라타기 힘들잖아. 능력 있어도 사장 되기 쉽지>. 거기에 나는 대답했었다 <다시 기차를 올라타도 내가 타고 싶었던 그 기차는 아니고>라고. 당시에는 일상적인 대화였으나 마음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종종 생각하는 것은, 살면서 분명 몇번은, 이 기차가 내가 타고 싶었던 것인지 아닌지도 생각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타거나, 아니면 타고 싶었던 기차에 타지 못하고 다음 기차를 타야하는 순간을 제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있는 게 아니라서, 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22살까지 살아넘긴 것도 그렇고, 연애에 있어서도 타인이 바꾸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라는 철학으로, 관계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미래를 확신하게 해 줄 수 있는 상대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연인으로서 내가 부족했던 점을 엄청 알아버렸다랄까. 
 과거 긍정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일련의 사건들에서 포지티브한 교훈을 끌어내자면, O를 만난 후에 나는 점점 시간과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지까지는 시간은 시간대로 나는 나대로 가거나, 시간에 쫓겨 정신없었던 상황이었다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에게 최근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이거다 <후회하게 될까?>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후회를 하든 안하든 중요한 것은, 후회가 찾아드는 순간에 내가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인 것 같다. (준비된 자세랄까?) 이렇게 또 형이상학적인 결론만 내놓고 현실에서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옮기지 않고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지. 심지어 내 마음도 말이다. 나 좀 쉽게 행복할 수는 없나? 라고 생각하고는 혼자 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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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