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머무는 풍경2010. 6. 19. 04:44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는, 납득 할 수 없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명령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조심하라고 말해도 엄마 손을 놓자마자 차도로 뛰어내려가던 시절이 좋았던 것은 어느 사이에 우리는 그 명령들을 까먹거나 그 명령들에 반항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렇다면..>이라는 체념어린 주절거림만을 친구 삼으며 돌아서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이 나에게 명령했었다. 멈추라고. 아마 그는 고장난 자전거를 탄 내가 전 속력으로 그에게 돌진할까봐 무서웠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에게야 멈추는 것도 쉽고, 도는 것도 쉽고, 또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것도 쉽겠지만 나는 자전거가 서툴렀었나보다. 자전거는 넘어졌고 나는 죽지는 않았지만 엉망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게 '어른스러움'이었는지 '나다움'이었는지도 잘 구분 못하겠다. 어쨌든 그 순간 나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날 일본에서의 나는 열병처럼 그의 잔해들에 시달렸다. 감정의 문제는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는 것과는 다르니까. 술을 마시고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고, 두서 없이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집어넣었다 했다. 정신 나간 것 같았어,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후덥지근한 공기가 소나기에 밀려 사라지듯 열병은 순식간에 나았고, 긴자의 어느 뒷골목에서 멈추라는 싸인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쪽으로 가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어본다. 아마 영원히, 그 곳에서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영원히, 그곳에 다시 갈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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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