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몰아치던 비바람에 자다깨다를 반복하고는 늦은 오후 눈을 떴다. 어느새 맑은 하늘이 고개를 쭈삣 내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모양새가 신기할 따름. 그래도 간 밤에 내 방 창문을 무섭게 두드리던 그 쿵쿵 대던 소리와 찢어질 듯한 바람의 비명이 마음 언저리에 남아 아직 조금 두렵고 또 반대로 고운 햇살에 살포시 마음을 놓아본다.
처음 춘천에 갔을 때 우리는 기차를 탔고 자전거를 빌렸고 다시는 못 올 곳처럼 이리 저리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금새 지쳤고 그랬던 것 같다. 올 해의 우리는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40분만에 춘천시에 도착했고 차를 세우고 닭갈비를 먹었고 다들 소양강댐은 귀찮으니 숙소로 돌아가겠다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도 H와 나는 그 10년전의 기억을 원동력 삼아 소양강댐에 오르며, 그 때 그랬지, 그 때 이런 일도 있었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자전거를 가지고 소양강댐에 올랐고, 배를 타고 청평사에 들어갔고, 저기 저 숙소에서 잤고,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여전히 소양호 위는 사람들로 바글 댔고, 소양강댐이라는 흰 글씨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덧없다는 듯 조용히 또 꾸준히 강은 흐르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를 만들고, 현재의 기억이 다시 미래로 나아가겠지. 강물의 흐름이 어느 정도 빠른지 몰라서 그 북한강의 물이 나보다 빨리, 혹은 나보다 느리게 서울에 도착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은 강물이 흐르듯 모두 변해간다. 때로는 떠나간 것들을 모르고, 때로는 찾아온 것들을 모르고 당연한 듯 지금을 살아가고, 때로는 아쉬움과 쓸쓸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대고 때로는 고마움과 따뜻함에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그것도 잠시 뿐, 금새 또 만나고 헤어지고, 즐겁고 슬프고가 반복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인생.
현재의 번민이 어젯밤의 태풍처럼 사라질 것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는 나이. Y의 말마따라 스물 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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