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주경철 교수님의 글 중 하나에 크게 공감하여 옮긴다. 원래 artlifeshop.com이라는 웹진에 연재한 글 중에 하나인데 찾아보니 웹진은 없어진 모양.
문득 이윤기씨가 돌아가셨고 그러니까 못다 본 그의 그리스로마신화 4.5권을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 스크롤 압박 심함 -_-;
<'나'를 만나는 두려움~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1. 공포 속의 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에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인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나를 아는 일이다."
그렇다. '나'를 아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남을 보기만 하지 진실로 '나'를 되돌아보는 경우란 거의 없으므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낯선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든지 '나'를 직면하게 되는 경우에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다.
언젠가 이런 꿈을 꾸었다.
어둑어둑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시 문이 하나 있다. 그 문을 열자 다시 방이 나오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뒤돌아서 서 있다. 그 사람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웃는다. 그는 누구였을까? 아, 다름 아닌 '나'가 아닌가! 저 앞에 나 자신이 서서 나를 지켜보며 웃고 있다니.
그 공포스러운 나 자신과의 만남.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지만 언젠가는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미 2천 년 전부터 고대 그리스 문명은 이렇게 말해 왔다.
"너 자신을 알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알아가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2. 오이디푸스의 운명
<오이디푸스>의 배경과 기본 스토리는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을 못 가지는 운명이었으나 신의 뜻을 거스르고 기어이 아들을 원했다. 그러자 신은 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운명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작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런 신탁을 받은 라이오스 왕은 목동에게 아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린 아기를 불쌍히 여긴 이 목동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기를 넘겨준다. 마침 아들이 없던 이 나라의 국왕에게 발견된 이 어린 오이디푸스는 결국 코린토스의 왕실에서 자라게 된다. 장성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신탁을 받아보자 역시 마찬가지의 내용을 듣게 된다.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를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로 알고 있었던 오이디푸스는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이 나라를 떠난다. 그는 방랑하던 중에 세 갈래 길에서 우연히 그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 일행과 맞닥뜨려서 시비가 붙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는 흘러 흘러 자신이 태어난 곳인 테베로 가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길을 막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괴물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수수께끼를 던져서 만일 그것을 못 풀면 그 사람을 잡아먹고, 누군가가 그 수수께끼를 풀면 스핑크스가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죽었다.
오이디푸스는 이 수수께끼를 풀어서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그 덕분에 테베의 왕이 되었고-전왕 라이오스는 국가의 재난을 이겨내기 위해 신탁을 받으러 가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테베의 시민들은 마침 스핑크스의 재난을 푼 오이디푸스를 새로운 국왕으로 앉혔다-전왕의 왕비인 이오카스테(즉 오이디푸스의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신탁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 사이에서 2남 2녀(에테오클레스, 폴뤼네이케스, 안티고네, 이스메네)가 탄생했으니, 이들은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의 아들이자 동생, 그리고 딸이자 누이동생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테베에는 새로운 재앙이 닥쳤다. 여자들은 아이를 유산하고 곡물은 자라지 않고 역병이 돌아서 시민들이 다 죽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재앙을 이겨내기위해 오이디푸스는 다시 신탁을 받아보았다. 그 신탁의 내용은 이 나라에 부정한 자, 즉 전왕을 죽인 살인자가 있기 때문에 재앙이 일어난 것이므로 그 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지배자로서 오이디푸스는 그놈을 기어이 잡아서 국가를 평안히 하겠다고 선언한다.
소포클레스의 극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오이디푸스는 만백성을 모아놓고 그 죄 많은 자를 잡아서 처형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이 극은 오이디푸스가 자기 자신을 찾아내 가는 이야기가 된다.
조금씩 조금씩 여러 정보들이 들어오고 그때마다 오이디푸스는 약간씩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이 선왕을 살해한 자이며 더구나 그 선왕이 자신의 아버지이고 현재 한 침대를 쓰는 여인이 자기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이 세상을 방황하게 된다.
3. 스핑크스의 두 번째 수수께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 가운데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그 수수께끼의 내용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 때에는 두 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인가? 답은 물론 '인간'이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놓고 그 많은 사람들이 풀지 못해서 괴물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한마디로 '목숨 걸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가 과연 그렇게 어려운 난제였을까? 만일 당신이 처음 이 문제를 받았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수수께끼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토록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괴물에게 잡아먹힌 것치고는 너무 쉬운 문제가 아닌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수수께끼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다. 즉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해결하지 못하고 괴물 같은 인생 그 자체에 잡아먹힌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수수께끼는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지만 막상 용기를 가지고 풀려고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리고, 그러면 그 수수께끼는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어떤 판본에서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하나가 아니고 두 개로 되어 있다. 스핑크스의 두 번째 수수께끼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만일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할 때 자신있게 풀 수 있었을까?
그 수수께끼는 이러하다. 언니와 동생이 있다. 언니는 동생을 낳고 동생이 언니를 낳는다. 이 자매는 누구인가?
답은 낮과 밤. 즉 '시간'이다. 우리가 정말로 풀어야할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시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막무가내의 운명에 휩쓸려 들어가서 고통받으며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렇다.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을 벗어나 있는 존재는 신 밖에 없다.
4. 만물은 슬프다, 시간이 흐르는 곳에....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고, 운명의 신이 정해 놓은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그토록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외친다.
"신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하시려 하셨나이까?"
오이디푸스는 그의 처음에 '대왕'으로 나와서 만백성을 모아놓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극의 끝에서는 자기 자신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눈을 뽑아 장님이 된 채 온 세상을 방랑하는 추방자가 된다. 최상의 자리에서 최하의 위치로 급전락한 것이다. 수수께끼를 풀어 영광을 차지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이 곧 그의 파멸을 초래하는 새로운 수수께끼가 되어 그를 덮친다.
이 운명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뿐, 눈 뜬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운명의 길을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눈을 뽑아 장님이 되었다. 이 '암흑'을 가져다 준 것은 '광명'의 신 아폴론이다. 우리 인생은 이처럼 아이러니의 연속인가?
우리의 삶이 이러할진대 인간이 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길 밖에 없다. 그리스인에게 가장 중요한 말의 하나인 운명(Moira)의원래 뜻은 자기 '몫'이다. 너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하고 그대로 살아가라. 그 이상의 몫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신의 뜻과 운명의 힘, 섭리에 어긋나는 길을 가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죄의 하나인 오만(hybris)을 범하는 것이다. 가장 슬기로운 일은 조화와 중용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강물에 떠내려가는 풀잎처럼 하염없이 휘몰리기만 하는 존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때로 그 엄청난 힘 앞에 과감히 맞서서 장렬히 부서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때로는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고 또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소포클레스의 이 비극 작품을 보면서 도대체 오이디푸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그토록 처참한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는 성격이 급하고 그 결과 함부로 칼을 휘둘러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 또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생각하기도 힘든 죄악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그의 잘못인가? 신이 원래 그렇게 정해 놓았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지 오이디푸스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오이디푸스는 유덕하고 고귀한 인간의 풍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올바르고 자비로운 왕이며 훌륭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진실을 갈구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진실에 대한 용기가 오히려 그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따름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책임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 혹은 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비록 신이 우리에게 그런 운명을 예정해 놓았더라도 결국 나의 삶을 산 것은 나이므로 책임은 내가 질 수 밖에 없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후 코러스(시민들)와 나눈 대화는 오이디푸스의 도덕성을 말해주는 절창(絶唱)이다.
코러스: 오, 대왕이시여!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스스로 빛을 앗아갈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어떤 사악한 신이 이렇게 했습니까?
오이디푸스: 아폴로 신이오, 그것은 아폴로 신이었소. 내게 이 고통 이 괴로움을 준 것은 신이었소. 그러나 내눈을 친 것은 나의 손이었소.
비록 우리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장님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더듬어 나갈 수 밖에 없다. 나의 삶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오이디푸스의 그 장렬한 쓰러짐을 보면서 연민과 동시에 그 어떤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이 한없이 무력한 존재이면서도 내가 나 자신을 알고 나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출처: (저작권법에 걸린다하면 얼른 내리는 수 밖에 : ) )
# 31.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주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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