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싸면서 드는 생각들>>
1. 상자에 넣는게 나을까, 그냥 끈으로 묶는게 나을까?
엄마는 그냥 끈으로 묵어서 창고에 쳐박으라고 했지만, 나는 상자에 넣고 싶단 말이다. 상자 값이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남았다.
2. 두꺼운 책 한권이 나을까 얇은 책 두권이 나을까?
내가 거기가서 서점을 차릴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인터넷 교보 장바구니의 결제 금액은 20만원을 훌쩍 넘어가고, 무슨 책을 가져가야 할 것인가의 고민에도 빠졌다. 지금 책 선택을 잘 못하면 정말 내가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거나 잘 못 된 길로 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우려를 하면서 생각한다. 두꺼운 책 한권만 가져갈까, 얇은 책을 두권 가져갈까?
3. 필요하면 사면 될까?
사실은 일주일 이상의 여행을 갈 때 꼭 챙기는 것중에 하나는 손톱깍기다. 그거 참, 돈주고 사기는 아깝고, 하지만 어느 순간 굉장히 필요하다. 대강 옷을 챙기면서 필요하면 사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필요하다고 살 수 있을까? 필요한 순간에 사고 싶은 것이 나타날지도 문제고, 이게 정말 필요해, 라고 생각하면서 덥썩 살 수 있을지도 문제다. 나는 정말 내 돈이 필요한데, 세상에 내 돈이라는 게 없는 게 문제. 다들 내가 이러면 웃던데, 나는 진지할 때도 있다. 가끔, 아주 가끔.
4. 버릴까 말까?
창고에 넣어버릴 것들을 추스리다보면 의외로, 존재조차 몰랐지만 큭큭 대며 웃을 수 있는 것들이 나오고는 한다. 분명히 그 모든 것이 나를 깔깔깔 웃게 만들고 즐겁게 만들어주지만, 그 중 일부는 보관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그 중 대부분은 별로 쓸데가 없다. 특히 지금 사이가 안 좋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과의 물건들은 더욱 그렇다. 버릴까 말까. 가지고 있으면 마치 그 사람과의 인연이 똑 끊어진 것만은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지지만 사실 그런 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버릴까 말까.
5. 지도가 필요할까? 가이드북이 필요할까?
요즘은 차를 빌리면 네비게이션이 옵션이니까, 사실 지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디서든 인터넷이 되니까 가이드북도 안 필요할 것 같다. (네이버 윙버스 만한 가이드북이 없다.) 바다를 건넜다고 길을 헤매지 않을까? 지구의 반대편에서 길을 잃으면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지만, 사실 늘 언제나 항상 내 옆에 누군가가 붙어있겠지. 조금 안심이 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에 둘러 쌓인 이 곳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고 누군가가 붙어있어도 그에게 길을 물을 수 없다. 인생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라서 지도가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고 가이드북이 있어봤자 도움이 되지 않고, GPS는 신호를 받지 못한다. 단지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된다, 랄까.
그런데 나,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른한 오후의 수다/일상의 기록들2010. 4. 29.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