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화)
우습게도 오늘은 간만에 날씨가 음산해진 날인데 나는 또 감 못잡고 옷도 가볍게 입고 나온 주제에 이상하게 덥다. 의자에 털썩 앉고 나니 내 땀 냄새가 훌쩍 올라오는 게 괜시리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가끔 의외의 순간 의외의 것들이 생각 지도 않았던 기억들을 데려오는데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미끈미끈한 게 찝찝해도 꼭 잡고 놓을 타이밍을 잡지 못하던 처음 하던 연애 생각이 났다랄까. 우습게도.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잘 기억도 안나는데.
어제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이가 사실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연애의 기억은 M선배와 만나기 직전까지였다는 말을 했다.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좋아할 수 있던 시기였어,라고. 내가 아는 M 과 그녀의 연애는 일단 짧았고, 그녀가 먼저 이별을 말했고 순정남의 전형마냥 M은 꽤나 마음 고생이 길었는데 그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게 너무 신기했다. 그런데 왜 헤어졌어? 라는 내 말에 대답은 3글자. "어렸지."
그래, 우리 아주아주 어린 주제에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굴었던, 정말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언제 잡은 손을 놓아야 하는 지, 언제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언제 전화를 끊어야 하는지, 어떻게 넘치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던 시절. 엔진이 타 터질때까지 브레이크라고는 모르고 정면 돌진하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노래 가사마냥 그건 너무 이상항 경험이고 그래서 행복한데 불안함을 느끼고 그 불안함이 불행의 전주가 되던.
내 인생, 내 선택은 결국 나만의 것이라는 것을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해 서투름에 주변을 둘러보지만 누구 하나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을 때의 두려움이 그때는 있었다. 마치 나 혼자만의 느껴지는 이 땀 냄새와 후덥지근한 열기 같이. 그 때는 그게 왜 그리 어색했을까. 그 모든 처음엔 감정을 모두가 왜 그 사람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소중하기 그지없어 두 손으로 고이 감싸 안아야 하는 것임을 왜 알 수 없었을까. 아마 시간을 되감아도 알 수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때는.
처음은 뭐든지 기억에 남는다는데, 갑판에 올라와서도 펄쩍 몸을 튕겨대는 큰 물고기의 생생함이 아니라 조금 더 처연한 안개빛이겠구나 하는 요즘.
그렇게 같은 듯 다른 기억을 모두 끌어안고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처음에서 두번째로 두번째에서 세번째로. 강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지만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오직 다음 징검돌만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