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일본 작가가 아닌(6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음) 이시구로 가즈오씨의 2005년작.
SF소설로 분류되나 시스템보다는 인간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블레이드러너나 공각기동대 스타일의 SF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
같은 이유로 장르 문학에 빠져 있는 사람보다는 정통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추천.
밝고 명랑한 성장 소설 말고, 뭔가 아련하나 비극적인 현실과 마주 대할 수 있는 사람이나 그런 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 왠지 쓸쓸해 바다에 가고 싶은 서른 한 살의 여자에게도 추천.
#10. 나를 보내지마 -이시구로 가즈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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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99%책 제목에 꽃혀서 사게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LA로 오는 비행기에서 놓지를 못했다. (오빠가 30분이나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게 했으나 외려 책을 더 읽을 수 있어 좋았다는;)
뭐 그렇게 퐁당 빠져서 읽을 수 있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인공인 캐시에게 엄청나게 감정 이입한 게 주 이유겠고, 소설책을 읽으면서 내가 좀처럼 하지 않는 주인공과 내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미련하게 과거를 기억하려 애쓴다는 점이나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넘어의 진실과 마주 대하고 싶어한다거나 (근사하고 형이상학적으로 묘사해 버렸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억지로 웃음보다는 솔직한게 거 좋다는 것이다.) 특징이 강하지 않아서 어떤 인물인지 한마디로 표현 되기 힘든 면도 조금 닮았다고 느꼈다. (이제 나를 알고 책도 읽은 사람이 나타나 "아니야, 너랑 완전 달라. 넌 좀 너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일만 남았다. )
아니면 주인공의 회상과 독백, 과거에 대해 이해하는 방법에 너무 공감해서 나랑 닮은 걸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50먹은 아저씨가 서른살 여자의 마음을 이렇게 공진 시킬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
책은 전통적인 SF의, 또한 문학의 주제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하고 있고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주인공과 기대하지 않았던 결말"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엄청나게 커다란 파도를 불러 일으키고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죽음을 앞에 두고 천천히 기억되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터무니 없고 비논리적이고 비밀스럽지만 완벽하다. 딱 완벽하게 삶을 계속할 정도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 사이에 캐시가 품었던 이상한 점들, 빠져있는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 존재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마주대할 만큼 강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눈물 흘릴 줄 알지만 주저 앉지 않는다고 해야할까나.
나이를 먹는 것은 삶의 비극성을 일부러라도 곡해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같이 키워주는데, 입버릇처럼 "이제 적당히 해피엔딩이 더 좋다. "던지 "기왕 주인공 둘이 만난 거 행복하게 살게 해주면 안되나?"같은 말들을 입에 붙이고 살지만 여전히 깊은 감동과 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인생의 비극적인 단면까지 포용하는 스토리인 것 같다. (그래 나 우울한 녀자다.)
<작가 인터뷰: 들어봅시다 영어!>
키이나 라이틀리가 이 책의 실사판 영화에서 주인공의 친구 루스역으로 나온다니 역시 니가 추천하는 건 조금 불안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로 보면 될듯.
덧, 제목에 꽃힌 이유는 나에게는 저 말이 엄청 로맨틱한 멘트이기 때문인 듯.
"Never let me go. 나를 보내지마."
간절함과 확신없이는 할 수 없는 말.
그렇지만 99% 버림 받을 상황에서만 뱉을 수 있을 것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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