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머무는 풍경'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0.07.25 먼 곳에의 그리움 3
  2. 2010.06.21 Belief. 2
  3. 2010.06.19 멈춰!(とまれ) 1
그대가 머무는 풍경2010. 7. 25. 20:01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너무나 꿈 같아서 생생함이 떨어져버리지만 실로 샌프란시스코는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멍하고 나른한 "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내 마음대로 Y네 커플을 너무 편하게 여겨버리기 시작한 것도 있고(내 탓), 또 어느 정도는 그 커플의 고유한 분위기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남 탓).

때때로 내가 왜 대학을 졸업한 후 곧장 미국에 가지 않고 여기서 이 맨 땅에 헤딩하기를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는데, 실상 2005년에는 미국에 가면 외로워서 죽어버릴 것이라는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올해 내가 머물렀던 캘리포니아는 어쩜 이렇게 여유롭고 따뜻한 곳이던지, 상황이 변한게 하나도 없으니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 나이 때문인지 내 삶의 이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날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많은 것들에 나는 감사하게 되었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올해의 5월 여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글자 그대로 "낯선" 땅에서편한 대안을 선택하지 않고 조금 다르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내 가치관 때문일 수 있지만, 그렇게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은 많든 적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큼 마음 편해지는 것은 없으니까.

먼 곳의 낯선 장소, 두려움에서 꽃 핀 설레임,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 이 모든 것들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게 바람을 막아줄 아늑한 공간과 잡으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손을 쥐고 있어서가 아닐까. "먼 곳에의 그리움"이 "지금 잡은 이 손"과 같은 뜻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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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머무는 풍경2010. 6. 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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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머무는 풍경2010. 6. 19. 04:44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는, 납득 할 수 없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명령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조심하라고 말해도 엄마 손을 놓자마자 차도로 뛰어내려가던 시절이 좋았던 것은 어느 사이에 우리는 그 명령들을 까먹거나 그 명령들에 반항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렇다면..>이라는 체념어린 주절거림만을 친구 삼으며 돌아서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이 나에게 명령했었다. 멈추라고. 아마 그는 고장난 자전거를 탄 내가 전 속력으로 그에게 돌진할까봐 무서웠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에게야 멈추는 것도 쉽고, 도는 것도 쉽고, 또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것도 쉽겠지만 나는 자전거가 서툴렀었나보다. 자전거는 넘어졌고 나는 죽지는 않았지만 엉망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게 '어른스러움'이었는지 '나다움'이었는지도 잘 구분 못하겠다. 어쨌든 그 순간 나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날 일본에서의 나는 열병처럼 그의 잔해들에 시달렸다. 감정의 문제는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는 것과는 다르니까. 술을 마시고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고, 두서 없이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집어넣었다 했다. 정신 나간 것 같았어,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후덥지근한 공기가 소나기에 밀려 사라지듯 열병은 순식간에 나았고, 긴자의 어느 뒷골목에서 멈추라는 싸인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쪽으로 가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어본다. 아마 영원히, 그 곳에서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영원히, 그곳에 다시 갈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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