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너무나 꿈 같아서 생생함이 떨어져버리지만 실로 샌프란시스코는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멍하고 나른한 "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내 마음대로 Y네 커플을 너무 편하게 여겨버리기 시작한 것도 있고(내 탓), 또 어느 정도는 그 커플의 고유한 분위기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남 탓).
때때로 내가 왜 대학을 졸업한 후 곧장 미국에 가지 않고 여기서 이 맨 땅에 헤딩하기를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는데, 실상 2005년에는 미국에 가면 외로워서 죽어버릴 것이라는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올해 내가 머물렀던 캘리포니아는 어쩜 이렇게 여유롭고 따뜻한 곳이던지, 상황이 변한게 하나도 없으니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 나이 때문인지 내 삶의 이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날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많은 것들에 나는 감사하게 되었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올해의 5월 여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글자 그대로 "낯선" 땅에서편한 대안을 선택하지 않고 조금 다르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내 가치관 때문일 수 있지만, 그렇게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은 많든 적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큼 마음 편해지는 것은 없으니까.
먼 곳의 낯선 장소, 두려움에서 꽃 핀 설레임,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 이 모든 것들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게 바람을 막아줄 아늑한 공간과 잡으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손을 쥐고 있어서가 아닐까. "먼 곳에의 그리움"이 "지금 잡은 이 손"과 같은 뜻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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