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론은 유전자 수준에서의 변이가 각 개체에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차이가 다시 환경에 의해 선택된다는 이론이다. 그리하여 환경에 유리한 특성이 계속해서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에 있어 환경에 의해 선택되는 행태는 다시 두가지로 나뉘는데, 그 개체가 처한 자연환경에 의해 선택되는 것과, 개체가 배우자에 의해 선호되는 정도인 성선택으로 나뉜다.
성선택이 뭐야? 응, 우리는 유전적으로 더 우수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본능이 있다는 거지. 라는 짤막한 대화를 듣다가 불쑥 슬퍼졌다. 망할. 아무에게도 선택받고 있지 못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서.
2. 최근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학계의 코드는 <진화>다. 기존의 학문들은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가정하고 출발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어찌되었든 "지금"은 완벽히 합리적일 수 없다.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었지만 <여지까지 잘 해왔어요>라는 의미지 <앞으로도 계속 잘 할 꺼에요>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진화이론이 시작된 것은 다윈 부터지만, 최근은 그 경향이 각 학문으로 퍼져나가, 진화의학,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으로 응용된다.
3. 네스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책에서는 질식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 아가미 호흡을 하던 어류의 일부(척추동물의 조상이다)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허파가 발달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입에서 위로 이어지던 통로밖에 없었다가, 허파가 발달하면서 기도가 만들어진다. 허파와 기도가 지금 모습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식도를 대신 호흡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인간까지 진화하면서, 완벽하게 분리되지 못하고 기도와 식도의 교차점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음식이 걸리면 우리는 켁켁 거리다 죽는 것이다. 어쩌다가? 매년 10만명 중 하나가 질식사한다고 한다. 하긴 우리나라의 사망원인 (통계청 홈페이지 자료를 뒤적여보면, 좀 철이 지나기는 했으나, 2007년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으로 10만명당 137.5명, 2위가 뇌혈관질환(59.6명), 3위가 심장질환(43.7)명이다. 자살이 4위로 24.8명, 교통사고가 15.5명으로 6위다) 에서 1위를 하려면 10만명 중 150명정도는 매년 죽어줘야하니, 어쩌다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옆길로 샜지만, 아무튼 인간은 이렇게, 그때그때 환경에 맞춰 진화해왔다는 것이고, 과거의 흔적들을 완벽히 지우지 못한 특징들을 여기저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4. 진화 심리학자인 개리 마커스는 인간의 몸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면에서도 인간은 클루지다, 라고 이야기한다. 클루지(Kluge)라는 것은 사전에 설계하여 최적의 재료들을 모아 만들어낸 장치가 아니라, 있는 것을 가지고 대강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만들어낸 장치를 말한다. 위키 백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Kluge: an ad hoc engineering solution, inelegant in principle but possibly elegantly pragmatic, from klug [German] meaning clever.
책이 물론 많은 영역에서 인간 심리의 클루지적 측면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서는 그 중 하나만 살펴본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문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동물의 하나로 보는 게 더 나았을 무렵에는, 빠른 선택이 중요시 되었다. 예를 들면, 지리산에서 반달곰을 만났다라고 생각하자, 도망 갈 것인가 죽은 척 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도망 갔을 경우 벌어질 일들과 죽은 척 했을 경우 벌어질 일들을 생각한 후, 각각의 확률을 계산 하고 있으면, 당신의 살 확률은 확실히 0에 수렴한다. 조상님들은 하도 그런 상황에 많이 노출 되어서, 경험으로 습득했다. 뱀을 보면, 소리를 지르자. 바퀴 벌레를 봐도 소리를 지르자. 변태를 봐도 소리를 지르자(아, 또 옆길로 새려고 한다.)
그러나 기계화 정보화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을 이룩한 뒤 인간이 의도치 않게 곰을 만날 확률도 뱀을 만날 확률도 무척 적어졌다. 현대 사회에서는 계산하는 인간, 합리성을 쫓는 인간이 더 생존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진화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인간의 뇌는 언제나 갈등한다. 빨리 선택할 것인가, 신중하게 선택할 것인가. 이걸 쉽게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성이냐 본능이냐>
5. 그럼 다시 아무에게도 선택받고 있지 못한 나의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간락햐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의 주변에는 이성이 발달한 사람들만이 바글바글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빌 게이츠만큼은 아니어도 적당히 현대사회에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이성적인 잣대로 측량할 수 있는 것들 (수량화 될 수 있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기수 서수 합치면 그 범위는 늘어난다. 우리는 쉽게 A대학보다 B대학에 높은 점수를 주고, 직업 C보다 직업 D에 더 좋은 점수를 부여하니까. 그러니까 측량 가능한 것이 가진 돈, 사는 집의 시세, 키, 몸무게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을 선호한다. 분명 집에서 엑셀로 목록을 만들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는 엄청 본능적인 연애를 원한다는 것이다. (-_-; 그렇다고 한편의 야한 드라마를 찍겠다는 것은 아니고) 기왕이면, 별 이유없이, <나는 왠지 알 수 없지만 니가 좋겠어>가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나의 본능은 도망갈 준비를 함으로, 이건 연애가 되지 않는다. 고객의 Needs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기업이 바로 나다.
게다가 우연히도 내 본능이 적절한 사람을 택해주면 연애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내 본능은 엉뚱한 녀석만을 쫓는다. 외국에 살고 연인이 있는 O같은 놈에게 마음 설레하고, 내겐 너무 잘난 Z씨에게는, 계절마다 갈아엎어지는 보도블록에게 보이는 관심만큼도 보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게 내가 클루지여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한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인류의 커다란 진화에 있어서 선택받을 개체는 아니라는 것.
6. 올해 일본 예능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오와라이(코메디언? 으로) 콤비인 오오도리의 와카바야시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말(? 좋아하는 말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되새길 말이었는지 아무튼 그런 류의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로서 댄 것이 있다.
<약한 물고기가 육지에 올랐다>라는 말.
자신들이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자신들이 지지리도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인기를 얻기 위해 고민하고 자신들의 개그를 바꿔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나, 육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도 되니? (왠지 대답이 돌아올 사람에게 물으면 그 대답에 좌절 할 거 같아서 대답없는 블로그에 대고 묻는다)
7. 육지로 올라가는 건 뭘까?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으니 선택할까? -_-; 라는 거? 자신감을 보이고 싶지만, 사실 말이다. 성선택은 여자가 하는 거다. 어라?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게 아니라 아무도 선택하고 있지 않은게 문제란 말인가? 이런, 갑자기 여지까지의 논의들의 가치가 아주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아니지, 어쩌면 나는 인류의 성선택권이 여자에게서 남자에게로 확장되는 어마어마한 진화의 순간을 인지한 개체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게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클루지-게리마커스 (7.1)
성선택이 뭐야? 응, 우리는 유전적으로 더 우수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본능이 있다는 거지. 라는 짤막한 대화를 듣다가 불쑥 슬퍼졌다. 망할. 아무에게도 선택받고 있지 못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서.
2. 최근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학계의 코드는 <진화>다. 기존의 학문들은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가정하고 출발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어찌되었든 "지금"은 완벽히 합리적일 수 없다.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었지만 <여지까지 잘 해왔어요>라는 의미지 <앞으로도 계속 잘 할 꺼에요>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진화이론이 시작된 것은 다윈 부터지만, 최근은 그 경향이 각 학문으로 퍼져나가, 진화의학,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으로 응용된다.
3. 네스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책에서는 질식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 아가미 호흡을 하던 어류의 일부(척추동물의 조상이다)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허파가 발달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입에서 위로 이어지던 통로밖에 없었다가, 허파가 발달하면서 기도가 만들어진다. 허파와 기도가 지금 모습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식도를 대신 호흡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인간까지 진화하면서, 완벽하게 분리되지 못하고 기도와 식도의 교차점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음식이 걸리면 우리는 켁켁 거리다 죽는 것이다. 어쩌다가? 매년 10만명 중 하나가 질식사한다고 한다. 하긴 우리나라의 사망원인 (통계청 홈페이지 자료를 뒤적여보면, 좀 철이 지나기는 했으나, 2007년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으로 10만명당 137.5명, 2위가 뇌혈관질환(59.6명), 3위가 심장질환(43.7)명이다. 자살이 4위로 24.8명, 교통사고가 15.5명으로 6위다) 에서 1위를 하려면 10만명 중 150명정도는 매년 죽어줘야하니, 어쩌다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옆길로 샜지만, 아무튼 인간은 이렇게, 그때그때 환경에 맞춰 진화해왔다는 것이고, 과거의 흔적들을 완벽히 지우지 못한 특징들을 여기저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4. 진화 심리학자인 개리 마커스는 인간의 몸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면에서도 인간은 클루지다, 라고 이야기한다. 클루지(Kluge)라는 것은 사전에 설계하여 최적의 재료들을 모아 만들어낸 장치가 아니라, 있는 것을 가지고 대강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만들어낸 장치를 말한다. 위키 백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Kluge: an ad hoc engineering solution, inelegant in principle but possibly elegantly pragmatic, from klug [German] meaning clever.
책이 물론 많은 영역에서 인간 심리의 클루지적 측면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서는 그 중 하나만 살펴본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문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동물의 하나로 보는 게 더 나았을 무렵에는, 빠른 선택이 중요시 되었다. 예를 들면, 지리산에서 반달곰을 만났다라고 생각하자, 도망 갈 것인가 죽은 척 할 것인가? 이 상황에서 도망 갔을 경우 벌어질 일들과 죽은 척 했을 경우 벌어질 일들을 생각한 후, 각각의 확률을 계산 하고 있으면, 당신의 살 확률은 확실히 0에 수렴한다. 조상님들은 하도 그런 상황에 많이 노출 되어서, 경험으로 습득했다. 뱀을 보면, 소리를 지르자. 바퀴 벌레를 봐도 소리를 지르자. 변태를 봐도 소리를 지르자(아, 또 옆길로 새려고 한다.)
그러나 기계화 정보화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을 이룩한 뒤 인간이 의도치 않게 곰을 만날 확률도 뱀을 만날 확률도 무척 적어졌다. 현대 사회에서는 계산하는 인간, 합리성을 쫓는 인간이 더 생존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진화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인간의 뇌는 언제나 갈등한다. 빨리 선택할 것인가, 신중하게 선택할 것인가. 이걸 쉽게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성이냐 본능이냐>
5. 그럼 다시 아무에게도 선택받고 있지 못한 나의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간락햐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의 주변에는 이성이 발달한 사람들만이 바글바글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빌 게이츠만큼은 아니어도 적당히 현대사회에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이성적인 잣대로 측량할 수 있는 것들 (수량화 될 수 있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기수 서수 합치면 그 범위는 늘어난다. 우리는 쉽게 A대학보다 B대학에 높은 점수를 주고, 직업 C보다 직업 D에 더 좋은 점수를 부여하니까. 그러니까 측량 가능한 것이 가진 돈, 사는 집의 시세, 키, 몸무게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을 선호한다. 분명 집에서 엑셀로 목록을 만들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는 엄청 본능적인 연애를 원한다는 것이다. (-_-; 그렇다고 한편의 야한 드라마를 찍겠다는 것은 아니고) 기왕이면, 별 이유없이, <나는 왠지 알 수 없지만 니가 좋겠어>가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나의 본능은 도망갈 준비를 함으로, 이건 연애가 되지 않는다. 고객의 Needs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기업이 바로 나다.
게다가 우연히도 내 본능이 적절한 사람을 택해주면 연애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내 본능은 엉뚱한 녀석만을 쫓는다. 외국에 살고 연인이 있는 O같은 놈에게 마음 설레하고, 내겐 너무 잘난 Z씨에게는, 계절마다 갈아엎어지는 보도블록에게 보이는 관심만큼도 보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게 내가 클루지여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한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인류의 커다란 진화에 있어서 선택받을 개체는 아니라는 것.
6. 올해 일본 예능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오와라이(코메디언? 으로) 콤비인 오오도리의 와카바야시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말(? 좋아하는 말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되새길 말이었는지 아무튼 그런 류의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로서 댄 것이 있다.
<약한 물고기가 육지에 올랐다>라는 말.
자신들이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자신들이 지지리도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인기를 얻기 위해 고민하고 자신들의 개그를 바꿔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나, 육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도 되니? (왠지 대답이 돌아올 사람에게 물으면 그 대답에 좌절 할 거 같아서 대답없는 블로그에 대고 묻는다)
7. 육지로 올라가는 건 뭘까?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으니 선택할까? -_-; 라는 거? 자신감을 보이고 싶지만, 사실 말이다. 성선택은 여자가 하는 거다. 어라?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게 아니라 아무도 선택하고 있지 않은게 문제란 말인가? 이런, 갑자기 여지까지의 논의들의 가치가 아주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아니지, 어쩌면 나는 인류의 성선택권이 여자에게서 남자에게로 확장되는 어마어마한 진화의 순간을 인지한 개체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게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클루지-게리마커스 (7.1)
상세보기 |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Q84,무라카미 하루키 (0) | 2009.08.30 |
---|---|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0) | 2009.08.16 |
타임 패러독스-필립 짐바르도 (0) | 2009.08.01 |
소설 읽기 (2)-카프카,시골의사 (0) | 2009.07.23 |
소설 읽기 (1)-하루키, 상실의 시대/권지예, 뱀장어 스튜 (0) | 2009.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