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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9 부당거래
영화관2010. 11. 9. 18:23

0. "아 나 이번엔 진짜 아니라니까"
 류승완은 영화 초반부에, 영상미적으로는 가장 우수한 장면에 등장한다. 그래서 대사 한 방 날리고 사라진다. 이번엔 진짜 아니라고.

1. "그러니까 가지치기도 좋고."
 부당거래의 가장 큰 프레임은 권력 싸움이다. 검찰과 경찰, 검찰과 재벌, 경찰과 조직폭력배들 간의 안 부딪힐래야 안 부딪힐 수 없는 영역에서의 공존을 설명한다. 모두들 최철기(황정민)이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영화를 시작하지만,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것은 그도 사람이라는 것. 조직폭력배에게 돈 받고, 자기 밥 줄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도 사형대에 보낼 수 있고, 자신이 살아나갈 길을 위해 바둥 대며 살아간다. 
하긴, 누군들 안 그러겠냐, 단지 조직폭력배보다는 경찰이, 경찰보다는 검찰이, 더 "사람답게(?)" 살수 있을 뿐. 그래서 류승범이 말한다.

2."참 다들 열심히들 사십니다"
골프장에서 류승범이 말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황정민에게 하는 유해진의 대사에 있다.
"우리야 열심히 살아야지요. 우린 목숨 걸고 하지 않습니까." (형사님들은 옷을 벗는게 다 겠지만.)
류승완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중에 하나는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도 꼭 "눈물나게 웃기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는 것. 나에게 부당거래에서 그 캐릭터는 공수사관님. 정말 열심히 사신다. 뚱뚱한 기도는 자신이 보호해야할 사람이 달려나가 칼에 찔려 죽는 순간에도 뛰기 힘들어서 골프장에서 넘어져 버리고, 검찰 수사관은 수사하다가 경찰에게 혼쭐이 나고 목에 파스를 세개쯤 붙이고 나타난다. 영화의 줄거리에 변화가 될 만한 중대 사건은 그들 근처에도 안가고, 그들이 그렇든 그렇지 않든 세상은 흘러갈텐데 그들은 "참" 열심히 산다. 그런데 그것이 극장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자화상 아닐까.

3. "잘 하는게 뭐 중요한거냐. 잘 한다고 믿는게 중요한거지."
부당거래에 휘말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에 회의를 갖는다. 엄밀히 말하면 회의 같은 거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자신들이 잡아 넣은 아이가 감옥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게 죽어버리자 갖는다, 회의. 니가 정말 아동성폭행범이니? 용의자는 죽어서 말이 없다.
사실 부당거래가 시작된 이유는 단순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꼭 해결한다고 기자회견 했기 때문. 그래서 법무부장관이 경찰총장을 빡빡 갈구고 경찰총장은 최철기를 빡빡 갈구고. 그 놈의 대통령, 심지어 영화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아마 최철기 반장이 죽은 것도 "한 줄 보고"로 받거나 지나가는 뉴스로 봤을 것이다. 그것에 신경쓰기에 그 분은 너무 바쁘신 분. 영화에 출연하기에도 너무 바쁘신 분. (하긴, 그건 검찰 총장도 마찬가지.)
위에 보여지기 위한 혹은 결과를 위한 수사를 하던 모두를 벙찌게 만든 사건은, 결과가 사라진 것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의문을 갖는다. 우리 잘 해온걸까? 황정민이 대답한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이 판국에.

그런데, 중요한 것 같다. 이 판국까지 왔으니. 모두가 잘 하고 있냐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자문해야하는 사회, 뭔가 이상한 사회 아닌가? 열심히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로 괜찮은 사회가 잘 굴러가는 사회 아닌가. 중국 고사에 나오듯이, 임금이 누군지 모르는 시대가 태평성대. 현재 상황 대한민국?

4. "호의를 계속 베풀면 그게 권리인줄 알아."
류승범에게 공수사관이 경찰과의 협조를 언급하자 화를 내며 류승범이 하는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호의는 아무에게나 베풀면 안된다)
그렇지만 류승범의 대사는 또 다른 각도에서 봐도 된다. 권력을 잡은 쪽은, 권력을 놓기 싫어한다. 그게 정말 누구의 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그건 마이클 샌델이 할 이야기지 류승완감독이 할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하지만 지금은 내 것. 감히 탐내다니?

황정민이 유해진을 대하는 태도도 똑같다. 이용할 수 있는 곳에는 이용한다. 시끄럽게 안 떠들어줬음 좋겠다. 내가 지금 호의를 베풀고 있는데, 감히 니가.

극 중에서 인물들은 서로 자기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굽힐 때는 사정없이 굽힌다. 반대로 자기보다 낮은 권력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호의 베풀기"를 반복한다. 조직폭력배 앞에서는 한 없이 강한 경찰이지만, 검찰 앞에서는 옷도 벗을 수 있고, 경찰 앞에서는 한 없이 강한 검찰이지만, 재벌과 기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어디까지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분개할 일일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공수사관에게 걸려오는 딸과 부인의 전화가 정말 눈물겹지만, 웃음이 난다.

5. "머리 좋아서 검사 됐는데"
머리가 좋은 사람이 권력을 잡으니, 확실한 것은 "바른"길을 추구하기 보다는 누구에게 숙여야 하는지, 누구에게 가서 붙어야 하는지는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마지막에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류승범의 모습은 인상 깊지만, 또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 시대의 단면이다. 큰 건과 함께 묶이면 어떤 일도 금새 잊혀지는 것. 하긴 일개 검찰이야, 누가 기억이나 하겠냐. 심지어 성추행을 한 국회의원도 다다음해에 다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데. (그래 우리 나라에서 박카스 한 병과 악수한 번이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표를 잡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나도 알겠다 --; )

6. 부당거래
부당 거래가 존재하는 부분은 비단 영화에서 그려진 경찰-검찰-정치권-언론계 블라블라블라만은 아닐 것이다. (저 라인의 어딘가가 가장 많을 수는 있어도) 그리고 나도, 평범한 소시민이면 거의 대부분, 공수사관님처럼 시키는 일 열심히 하면서 알콩달콩 살고 있을 테고 -넉살만 늘어가면서. 그렇지만 가끔 아쉽다. 바르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살고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이 바르게 사는 지도 모르겠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한가롭게 앉아 영화감상문을 쓴 뒤, 먹고 살일을 걱정해햐야 하는 현실은 더더 안타깝다 -_-;

Posted by ae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