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기는 병원이다. 분당제생병원.

어제 구급차를 타면서 여기 올 때만 해도, 오늘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그래도 이제 병실에서도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간병인으로써는 (사실 간병을 하고 있는건지 아니니도 모르겠지만) 꽤나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마무리하자)


2. 

아버지의 상황은 다소 심각하지만 - 지금보다 수술 후 한동안이 더 힘들 것이다 - 엄마와 나는 이게 장기적으로는 좋은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상에 엄마랑 똑같은 생각을 했다니! 이건 정말, 나로써는 뜨악인 사건이었다.)




3. 

삶을 순간이라는 칼로 탁, 잘라내면, 그 단면에는 언제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이 산재해있다.

때로는 슬픔에 눈이 멀어 기쁨과 즐거움이 보이지 않고,

때로는 자신의 못난 점이 너무 눈에 띄어서 한없이 초라해보일지라도,

사실은 항상 우리는 우리 삶을 지탱해나갈 만한 "힘"을 내 안 어딘가에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요즘 특히 깨닫게 된다.



4. 

헤어진지 두 달이 되지 않는 시점.

나는 우연이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들으면서, 정말 내가 그 사람이 나랑 비슷한 감수성을 지녔다고 생각했었던 사실에 웃음이 났다. 숨어있는 인디씬의 노래들을 찾아내며 좋다고 말하고, 수업시간에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아주고는 했었는데, 그는 정말, 정말 나랑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마 내가 정말 "그렇게" 믿어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내 충격은 더 컸고,


'이별'이라는 선택보다는 그 방법에서 난 정말 백기를 들고 싶었다. 

이제 정말 그만.


그렇지만 가끔 이렇게 함께 좋아했던 노래를 들으면, 씁쓸한 기억에 잠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목록에서 이 곡을 빼 버릴까 고민할테고, 시간이 더 지나면 그조차 생각하지 않게 되겠지. 



5. 

그러나 더 힘든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사건이 나에게 더 커서,

누군가 들어오려고 하면, 

그걸 바라는 만큼 강하게 거부하게 된다는 것.


어디 푸른바다에 튜브를 띄워놓고 둥둥 떠있고 싶다.

마음이 파래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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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eons